중미 엘살바도르를 이끄는 자칭 '독재자' 나이브 부켈레(42)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재선을 확정했다. 이날 엘살바도르 대선에서 승리한 부켈레는 하비에르 밀레이(53)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제외하면 중남미에서 첫손가락에 꼽을 만한 '괴짜 대통령'으로 통한다.
이는 부켈레가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자신을 소개한 문구인 '세상에서 가장 쿨한 독재자', '철인왕'(플라톤이 제시한 이상적인 통치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자신을 독재자라 꼬집는 비판의 목소리에 냉소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는 이런 표현은 중남미 여러 지도자 중에서도 단연 '튀는' 인물로 각인된 상징적인 모습 중 하나다.
지난 2015년 수도 산살바도르 시장에 당선된 그는 2019년 대선에서 중도우파 성향 제3당의 후보로 출마해 30년간 이어진 양당 체제를 깨고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청바지와 가죽 재킷을 즐겨 입는 부켈레 대통령은 만연한 갱단 범죄와 부패 척결을 향한 강한 의지를 보이며 금세 국민을 사로잡았다.
공식 석상에서 정장 대신 미국 브랜드 랄프로렌 티셔츠를 즐겨 입는 그는 이날 투표장에도 평소 자주 착용하는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등장해 한표를 행사한 뒤 기자회견도 소화했다. 머리에 쓴 하얀색 야구모자 역시 같은 브랜드였다.
과거 군사독재와 유혈 내전, 정정 불안과 경제난 속에 산살바도르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폭력 조직 때문에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던 수도권 주민들은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정치인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일단 잡고 보는' 식의 폭력배 소탕 작전에 국민들이 체감하는 변화가 컸기 때문이다.
실제 악명 높던 살인율 감소 추이는 경이적인 수준이다. 2015년 세계 최고 수준인 인구 10만명당 105.2건에서 2023년에는 2.4건으로 뚝 떨어졌다. 미국이나 멕시코로 망명하는 국민 수도 2010년대 초반에 비해 지난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 행동으로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지지율만큼은 고공행진을 이어갔고, 임기 말 레임덕은커녕 아이돌 같은 인기를 누리며 재선에도 성공했다.
부켈레는 속옷 같은 하얀색 반바지 차림의 수감자를 중남미 최대 규모 수용시설인 테러범수용센터(CECOT·세코트)에 한꺼번에 가두는 사진과 동영상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시로 공개하기도 하는데, 이는 국제사회로부터 '인권침해'라는 원성을 사기도 했다. 부켈레의 거침 없는 국정 운영 방식은 전 세계 처음으로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한 결정에서도 단적으로 볼 수 있다. 한때 비트코인 시세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국가 예산을 동원한 엘살바도르 손해도 막심했다. 그나마 지금은 비트코인 시세가 오르며 약간의 수익을 내는 상황이다.
중도우파 성향인 부켈레는 팔레스타인계 이민자 출신 가정 출신으로, 아버지의 도움으로 18세 때 홍보대행사를 설립한 전력이 있다. 2012년 당시 좌파 집권당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 소속으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FMLN 내 기득권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다 2017년 당에서 제명됐다. 이후 그는 같은해 현재의 여당인 '누에바스이데아스'(새로운 생각)를 창당했다. 창당 연설에서 그는 "기존의 전통적인 정당을 현재의 위치에서 모두 몰아내고, 국민들을 지치게 하는 정치 체제를 바꿀 것"이라고 선언했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대통령의 자리에 앉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