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주세요.”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믿고 있습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6일 서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건물에서 열린 본위원회에서 김문수 위원장과 김동명 위원장이 주고받은 대화다. 과거 정부처럼 일방향적인 노동 개혁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대화와 공감대를 쌓는 ‘과정의 노동 개혁’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평가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첫 노동계와 경영계·정부(노사정)의 사회적 대화가 시작됐다. 근로시간과 임금이 노사정 대화 의제에 포함되면서 정권 초기 속도를 내지 못했던 노동 개혁도 다시 동력을 얻었다는 평가다. 정부가 노동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노동계와의 대화 창구를 열었다는 점도 노사정 대화 재개의 의미다.
이날 경사노위에 따르면 본위원회는 김동명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등 노사정을 대표한 17명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본위원회 대면 회의는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이다. 본위원회는 이날 상정된 5개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앞으로 일·생활 균형을 위한 제도,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고용 노동 시스템, 미래 세대 일자리 등 세 가지 주제의 세부 과제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각 주제별로 3개 위원회를 신설했다. 신설된 위원회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안과 정부가 추진했던 노동 개혁 과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위원회 논의 의제에는 근로시간, 임금, 계속고용, 산업 전환 등이 담겼다.
노사정 대화는 정부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역할을 해왔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거나 한쪽의 피해가 불가피한 정부 정책이 시행되기 전 공론화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높였다. 이번 노사정 대화도 참여 주체들의 위기의식이 밑바탕이 됐다. 김문수 위원장은 이날 본위원회 인사말에서 “노사정이 힘을 합쳐야만 국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김동명 위원장도 “기후, 인구, 산업 전환 등 복합 위기 시대를 극복하자는 게 노사정 공동 의지였다”고 말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본위원회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본위원회에 참석한 한 위원은 “‘왜 이렇게 늦게 만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덕담과 격려를 주고받았다”고 전했다.
노사정 대화의 시작은 속도를 내지 못했던 정부의 노동 개혁이 동력을 얻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노동 개혁에 속도를 내기 위해 노사정 대화 없이 신설한 전문가 기구의 제안으로 개혁 관련 정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대표적인 정책이 일명 ‘주69시간제’로 불렸던 근로시간 개편안이다.
노사정 대화는 경색된 노정 관계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정부와 노동계는 정권 초기부터 국정 방향을 두고 충돌했다. 특히 정부가 추진했던 노동조합 회계 투명화, 건설 현장 불법 노조 퇴출 등은 노동 탄압이라는 노동계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노조회계공시제에 응하고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복귀하면서 노정 관계는 전기를 맞았다.
하지만 노사정 대화가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노사정 대화 의제는 모두 찬반이 명확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근로시간의 경우 노동계는 장시간 근로를 줄이는 방향을 원하지만 경영계는 제도 유연화를 바란다. 제도 유연화는 장시간 근로를 조장할 수도 있다.
정부는 노사정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각오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실에서 경사노위 본위원회 위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오찬을 열었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오찬도 본위원회처럼 훈훈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단 노사정 대화는 특성상 논의 종료와 합의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난점이다. 4월 총선도 변수다. 만일 4월 총선 이후에도 현재처럼 국회 지형이 여소야대라면 입법이 불리한 정부는 노사정 대화를 통해 노동 개혁에 더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노사 관계 전망 보고서에서 “지난해 노사 관계는 노동 개혁의 미진함, 노동시장 이중구조 혁파의 더딘 진전 등으로 종합할 수 있다”며 “올해는 사회적 대화를 동반해 법치를 넘어선 협치와 자치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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