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이달 초 설 ‘밥상 민심’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지역 공약 속도전을 펼치며 숨 가쁜 시기를 보냈다. 수도권에서 ‘철도 지하화’, 비수도권에서 ‘생활 인프라 확충’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띄운 여야는 서로가 ‘원조’라는 점을 강조하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주요 지방자치단체의 장들도 소속 정당에 대한 지원사격에 나선 가운데 명절 이후 지역 표심의 향방이 주목된다.
◆ 수도권에선 ‘철도 지하화’ 띄우고
여야의 총선 지역 공약 중 가장 파괴력이 큰 것은 최대 표밭인 수도권에서도 다수 지자체의 요구가 있어 온 철도 지하화다.
공약 발표 시점만 놓고 본다면 국민의힘이 ‘선수’를 쳤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달 31일 수원을 찾아 전국 주요 도시의 도심을 지나는 지상 철도를 지하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지하화한 철도의 주변부는 고밀도 통합 개발을 통해 ‘압축 도시’를 구현하는 한편, 광역급행철도 운영 역시 전국 주요 대도시권으로 확대하겠다고도 공약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철도 지하화는 고착화된 도시 내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걸 원하는 지역은 많이 있을 것이고 (따라서) 규모의 경제가 생길 것”이라고 부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의 ‘선수’ 이후 하루 만에 철도 지하화 공약을 공개하며 즉각 대응했다. 민주당은 지난 1일 서울 신도림역에서 ‘철도 도심구간 지하화’ 공약을 발표하고 수도권·부산·대구·대전·광주·전주 도심의 지상철도 지하화 및 주변 지역의 고밀도 통합 개발을 약속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이재명 대표뿐만 아니라 지역구 내에 지상철도 구간이 존재하는 의원들이 총출동해 ‘간이 의원총회’를 방불케 했다. 이개호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은 지난달 18일 전문가 토론회를 여는 등 (공약) 준비를 이어 왔다”며 민주당이 ‘원조’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 비수도권에선 ‘인프라 확충’ 경쟁
비수도권에서는 지역 내 의료·산업·교통 인프라 확충에서 여야 간 경쟁에 불이 붙은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4일 비수도권 의료 및 산업기반 개선을 겨냥한 ‘지역 모두 튼튼’ 공약에서 지역의대·지역필수의사제 신설 및 지역 공공병원 육성을 공약했다. 현 정부의 역점 사업인 지역 내 ‘기회발전특구’로 이전하는 중소기업에는 상속세를 면제하고, 1주택자가 비수도권 읍면지역에 위치한 주택을 취득할 경우에는 ‘1주택자’로 간주하는 내용도 담았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역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기업과 일자리를 확충하는 것은 수도권 집중을 방지하는 것”이라며 “근본적으로는 저출생 문제 해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다음 날인 5일 민주당 지도부도 광주광역시를 찾아 비수도권 대도시의 정주 환경 개선과 일자리 창출 등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광주의 인구 유출은 2030 청년들의 유출이 높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교통·문화 인프라 강화와 일자리 창출 등 실효적 조치들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홍익표 원내대표는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달빛철도 특별법’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대표발의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여당이 이 법에 반대했다”며 민주당이 국회 통과를 주도했다는 점을 피력하기도 했다.
여야가 간발의 차로 비슷한 행보를 이어가면서 상호 간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5일 민주당을 향해 “자체적으로 종합적인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철도 지하화처럼 우리 당의 공약을 급하게 카피하거나, 그조차 어려우면 음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김성주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8일 “국민의힘이 민주당 공약을 따라하고, 베끼고, 가로채고, 나아가 선수치는 것은 그만큼 민주당의 정책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며 “더 많이 따라해 주면 좋겠다”고 비꼬았다.
◆‘지원 사격’ 나선 지자체장들
이처럼 중앙 정치권의 ‘공약 전쟁’이 이어지자 주요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장들도 소속 정당에 대한 지원사격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지사가 한 비대위원장의 2일 ‘경기북도 분도 추진’ 발언을 견제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김 지사는 지난 2일 “(분도 문제는) 얄팍한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며 “책임 있는 여당이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분도에 동의한다면 주민투표부터 빨리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 지사 본인 임기 내에 이미 분도를 위한 행정 절차들이 마무리되어 주민투표 실시까지 정부에 공식 건의한 상태임을 강조한 것이다. 김 지사는 5일 여당이 분도와 김포시·구리시의 서울 편입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둘은 병립할 수 없는 문제”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총선 일정을 염두에 둔 지역 정치권의 ‘내 고장 특별법’ 제정 움직임도 감지된다. 국민의힘 소속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여야 핵심인사를 연달아 만나며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안’ 통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봉민(부산 수영·초선) 의원 등 지역 국회의원들이 지난 25일 초당적으로 발의한 이 법은 부산시의 금융·물류·첨단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특례지역 지정 및 관련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 근거 등을 담았다. 박 시장은 통과 희망 시한을 ‘21대 국회 내’로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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