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무렵에는 미국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세계 5대 경제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프랑스나 독일보다도 더 부유했다. 유럽 국가에서 선진부국인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기도 했다. 농축산업이 활발하게 이뤄져 대규모 쇠고기를 전세계에 수출하며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100년만에 상황은 180도 변해있다. 물가는 폭등하고 빈곤율은 40%를 넘어섰다. 세계은행(WB) 자료에 따르면 ‘메시의 나라’ 아르헨티나의 경제 수준은 이제 전세계 70위에 머무르고 있다.
비옥한 초원에 소들이 넘쳐나지만 더이상 아르헨티나 국민은 쇠고기를 먹을 여유가 없다. BBC뉴스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살고 있는 20대 초반 젊은 부부 오리아나와 사미르의 말을 전했다. 그들은 “우리는 쇠고기의 나라인데 치킨만 살 수 있어요” 라며 자조섞인 말을 토해낸다. 이들 부부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라고 끊임없이 묻는다.
사실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는 닭고기조차도 부담스럽다. 지난해 아르헨티나 물가상승률은 211%로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12월에만 물가가 25% 넘게 상승했다. 식비 뿐만 아니라 임대료, 전기료, 교통비도 올랐다. 가계의 수입은 급격한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오리아나와 사미르는 사람들이 물가 폭등으로 인해 점점 더 삶이 절박해짐에 따라 거리에서의 치안 등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들은 “사람들은 단지 휴대전화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또다른 아르헨티나 국민 클라디오 파에즈는 총 12개의 과자점과 식료품점 체인을 운영하는 성공적인 사업가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매장 운영 비용이 치솟고 소비자들의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인해 사업의 영위가 어려워졌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가 3개월만 더 지속된다면 나는 곤경에 처해 지출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즉흥적으로 행동한다. 클라우디오의 상점 중 한 곳에서 멀지 않은 길가에는 작은 밴이 주차돼있다. 밴에는 계란 쟁반이 높이 쌓여있다. 계란 12개에 1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밴 주인은 경찰이 올 경우를 대비해 오래 머물지 못한다. 살타 국립대학교의 공식 수치 분석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인력의 거의 절반이 비공식 부문에 고용돼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이전 정부가 통과시킨 법안 덕분에 실제로 소득세를 납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결국 국가의 부채로 이어졌고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에 약 440억달러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최근 수치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40%가 빈곤 속에 살고 있다. 이에 경제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급진적 우파 자유주의 경제학자 하비에르 밀레이가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사미르는 "밀레이 대통령은 사람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아르헨티나에 꼭 필요한 사람은 바로 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중앙은행을 폐쇄하고 현지 통화인 페소를 완전히 없애 미국 달러로 대체하겠다고 약속했으나 현재 두 가지 공약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부 자금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신 밀레이 대통령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페소 가치를 절반으로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은 밀레이 대통령의 공약들은 의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의 개혁 정책이 시행되지 못하고 주춤하고 있는 사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이 250.6%까지 치솟고 경제도 예전에 예상한 것보다 더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OECD는 지난 5일(현지시간)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 업데이트에서 “높은 인플레이션과 상당한 규모의 재정 긴축으로 아르헨티나의 생산량은 2024년 감소한 뒤 개혁이 시작되는 2025년에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