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의사 단체들이 설 연휴 이후 본격적인 집단행동을 예고한 데 대해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7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의대 증원 저지를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9일에는 의협의 투쟁을 이끌 비대위원장으로 김택우 강원도의사회장을 선출했다.
의협은 설 연휴가 끝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집단행동에 들어간다. 15일 의협 산하 16개 시도 의사회가 전국 곳곳에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여는 데 이어 17일 서울에서 전국의사대표자회의를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역시 이날 오후 9시 온라인으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집단행동 여부를 포함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대전협은 이달 5일 수련병원 140여 곳의 전공의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의대 증원 시 단체행동에 참여하겠느냐’를 설문한 결과 88.2%가 참여 의사를 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전공의는 대학병원 같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어서 이들이 실제로 파업에 참여할 경우 의료 현장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른바 ‘빅5 병원(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도 자체 설문 조사를 통해 집단행동에 참여하겠다고 의견을 모은 상태다. 여기에 전 의협 회장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에서도 의대 정원 증원이 의료 현장의 혼란만 불어올 것이라며 정부의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부가) 의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이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발상이고, 문제는 그 재앙적 결과가 국민의 몫이라는 점”이라며 이번 의대 증원이 2000년 의약분업 당시의 비극과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알리며 “더 이상 의사들을 범죄자 소탕하듯이 강력하고 단호하게 처벌하려 하지 말라”며 “더 이상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응급 의료 현장을 떠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의료계의 집단행동 움직임에 일찌감치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 발표 당일인 이달 6일 전국 시도 의사회장을 상대로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발송했다. 진료 거부와 휴진 등 집단행동을 하거나 이를 조장·교사할 경우 의료법 제59조에 따라 행정처분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복지부는 이튿날인 7일 수련병원에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도 명령했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을 막기 위한 대응책이다. 경찰은 업무 개시 명령 위반 등 불법 집단행동 주도 단체와 인사를 시도 경찰청에서 직접 수사하고 수사를 위한 출석 요구에 불응할 경우 체포 영장을 발부할 예정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의사들의 단체행동 추진에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실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의사 단체행동에는 명분이 없다”며 “의대 증원도 돌이킬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의대 증원은 오래전부터 논의가 있었지만 정책 타이밍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번번이 놓쳤다”며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우려했다. 그는 “의대 증원은 정권 차원을 떠나 지속적으로 논의가 이뤄진 사안”이라며 “의사들도 대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지난 40년간 변호사는 10배 늘었지만 의사 수는 3배 늘어났다”며 “소득이 올라갈수록 전문직 숫자는 증가하기 마련인데 의사 수는 필요한 만큼 늘어나지 못했다.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한꺼번에 의대 정원이 2000명 늘어나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2000명을 지금부터 늘려나가도 부족하다는 게 우리 의료계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도 이날 논평에서 “의협이 또 파업으로 응수한다면 ‘밥그릇 지키기’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투쟁’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며 “국민의 고통을 먼저 살펴달라”고 요청했다. 정 대변인은 “그동안 의사 단체는 의대 증원을 추진할 때마다 파업을 무기로 반대해왔고 이는 현재 의사 부족과 필수·지역 의료 공백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의료 개혁 완성과 국민 건강과 생명권 보장을 위한 의사 단체의 대승적 협력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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