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방위비를 내지 않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러시아가 공격하도록 부추기겠다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통령 재임 시절의 극단적 고립주의 외교 성향을 재확인한 발언이었지만, 러시아 등 위협이 현실화된 현 상황에서는 그 파장이 클 수 밖에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 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경선 유세 도중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는 나토 회원국을 겨냥해 “나는 당신네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러시아)이 원하는 것을 내키는 대로 모조리 하라고 격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국 안보를 위해 동맹국이 돈을 더 써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적국에 동맹국을 공격하도록 선동하겠다는 발언은 전례가 없다. BBC는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여름 반격에 실패하며 나토와 서방이 위태로운 와중에 나온 위험한 발언”이라고 짚었다.
트럼프의 발언이 보도되자마자 국내외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날 성명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폴란드, 발트해 국가들도 공격해도 된다는 신호”라며 “끔찍하고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X(옛 트위터)에 “나토의 안보에 관한 무모한 발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뿐”이라며 “세계에 더 많은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유럽·아시아·중남미·중동 우방을 지켜온 글로벌 안보 우산이 종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지원도 끊길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유럽 동맹국이 미국에 기대지 못하면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다른 지역 국가들도 미국의 도움을 확신하기 어렵게 되고 이는 과거 6·25전쟁과 같은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1950년 한국을 제외한 극동방위선(애치슨 라인)을 발표한 지 5개월 만에 북한이 남침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BBC는 “푸틴이나 시진핑이 동맹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엄청난 오산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는 더 높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일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과 공동 설문조사 결과 미국 경제를 잘 다룰 것으로 보이는 후보로 42%가 트럼프를 꼽았다고 보도했다. 바이든을 선택한 응답자는 31%에 그쳤다. 에릭 고든 로스경영대학원 교수는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바이든의 메시지도, 긍정적 경제 지표도 많은 이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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