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민 10명 중 7명은 한국의 독자적 핵 개발, 즉 자체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현학술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15일부터 지난 달 10일까지 18세 이상 성인 10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5일 발표한 ‘북핵위기와 안보상황 인식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이 독자적 핵 개발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51.4%가 ‘그런 편’으로, 21.4%는 ‘매우 그런 편’으로 응답했다.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72.8%에 달한 것이다. 지난해보다는 4%p 정도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지지율이다.
핵무장 여론은 정치성향에 따른 편차는 거의 없었고, 소득이 낮은 층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북핵 위협에 가장 효과적 대응책’으로 한국의 핵 잠재력 강화(20.6%)를 가장 많이 꼽았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와 유사한 미국 핵 공유(20.4%), 한국형 3축 체계 강화(18.7%), 한반도에 전술 핵무기 재배치(16.2%)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北 비핵화 가능하느냐’에 91.1% 불가능
특히 ‘북한이 핵 선제 타격을 법제화한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49.7%가 가능하지 않다고 답했다. 41.4%도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 같은 비관적 응답률(91.1%)은 작년(77.6%)보다 더 높아진 수치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한국의 자체적 핵무장 필요성에도 높은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현 정부가 자체 핵무장의 반대 근거로 제시하는 한미일 3국 협력이 강화되고 있지만, 북한의 핵 위협 해소엔 충분치 못하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3국 정상회담 등 안보 협력 강화로 인해 북핵 위협이 해소될 것으로 보느냐’는 설문에 ‘그렇지 않다(53%)’와 ‘전혀 그렇지 않다(10.4%)’ 등 비관적 응답 63.5%에 달했다.
박인국 최종현학술원장(전 유엔 주재 대사)은 “이번 조사에 나타난 국민들의 전반적이 인식은 한국의 직접적인 참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한반도의 확장 억제 강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국민의 우려처럼 북한은 핵무력을 잇따라 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4월 북한은 전술 핵탄두 ‘화산-31’을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정렬한 핵탄두 앞에 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위력적인 핵무기’ 생산을 확대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북한이 핵탄두의 실물을 노출한 것은 처음이다. 다만 증폭핵분열탄으로 추정되는 탄두나 수소탄이라고 주장해온 탄두만 공개됐다.
공개된 전술 핵탄두는 직경 50㎝가량의 크기로 추정된다. 북한 매체들은 가지런히 늘어놓은 핵탄두들 앞에서 관계자들로부터 보고를 받는 김 위원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서 ‘화산-31 장착 핵탄두들’ ‘600㎜ 초대형방사포 핵탄두’라는 문구가 노출돼 있다.
김 위원장은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전망성 있게 확대하며 계속 위력한 핵무기들을 생산해내는 데 박차를 가해나가야 한다”며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하고 우세한 핵무력이 공세적인 태세를 갖출 때야 적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국권과 제도, 인민을 감히 건드릴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북한 보유 핵무기 수는 ‘20~90기’ 추정
추정하는 전문가와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현재 북한의 보유 핵무기 수는 20~90기 정도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6차 전원회의에서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라”고 지시했다. 이에 북한은 비밀 고농축 우라늄 시설 등이 계속 활발하게 가동되면서 핵무기 원료를 꾸준히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핵군축 전문 민간연구소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발간한 ‘북한 핵무기 보유고-새로운 추정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핵무기 45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2022년 말 기준으로 북한이 만들 수 있는 핵무기는 35~65기 사이로 중간값은 45기라고 예측했다.
북한은 보유 핵무기 숫자뿐 아니라 각종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전술핵탄두의 소형화에도 상당한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화산-31형은 직경 40~50㎝, 길이 90㎝가량으로 북한이 지금까지 공개한 핵탄두 중 가장 작다. KN-23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물론 600㎜ 초대형방사포, 무인수중공격정 ‘해일’, 화살-1·2 장거리 순항미사일, KN-24 미사일, ‘미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신형 전술미사일 등 8종의 무기에 핵탄두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에는 한발 물러서 있다. 사실상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핵우산)만으로 충분하다는 기조다.
당장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특별대담에서 일각의 '핵무장' 주장에 대해선 “핵 개발 역량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에 비춰 보면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핵 개발에) 시일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란 말씀은 드릴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2∼3년 안에 핵무기를 개발해 배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국가 운영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NPT(핵확산금지조약)를 철저하게 준수하는 게 국익에 더 부합된다”고 일축했다. NPT 체제는 핵 비보유국이 새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우리가 지금 핵을 개발한다고 하면 아마 북한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경제 제재를 받게 될 것”이라며 “우리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입장과 달리 최종현학술원의 조사에서 우리 국민들은 ‘한반도 유사 시에 미국이 핵 억지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가’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60.8%)는 부정적 답변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지난해의 48.7%보다 12.1%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학술원은 이러한 변화는 한국 국민의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다기보다는 북한 핵무기 개발의 고도화와 광폭해진 도발 자세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의 입장처럼 득보다 실이 큰 독자 핵 무장이 어렵다면 영국의 핵무기 재무장 계획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미국의 영국 레이큰히스(Lakenheath) 공군기지 시설 현대화 사례처럼 주한미군기지에 접목하는 것이 북한의 핵 억제 방안으로 가장 실효성이 높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미국이 15년 만에 영국에 핵무기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레이큰히스 공군기지 시설을 현대화하고 최신 전술핵무기 B61-12 배치를 추진하는 것이다. 레이큰히스 기지에는 1990년대 지하시설 33개를 기반으로 B-61 계열 전술핵폭탄 110개가 배치됐다가 2008년 모든 전술핵이 철수됐다.
우리도 과거 주한미군의 전술핵이 배치됐던 오산과 군산 공군기지 내 핵무기 저장시설을 현대화 또는 개조하거나 전국 수십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주한미군기지에 핵무기 저장시설을 신축해 영국 사례처럼 한반도 내에 직접적인 핵무기를 배치하자는 논리다. 그러면서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유사시 순환·임시·고정적으로 배치해 북한의 핵위협을 더 효과적으로 억제하자는 것이다.
美, 英 공군기지 핵 저장 시설 현대화 추진
확장 억제 전문가인 조비연 국방연구원(KIDA) 선임연구원은 2022년 ‘나토 핵 공유 체제의 대안 모색’(KIDA Brief 안보 8호)에서 “미국은 전술핵폭탄을 고정 배치하지 않더라도 과거 저장시설의 현대화를 통해 동맹의 결속력, 확장 억제의 확고한 의지를 발신하며 유사시에는 한시적으로 핵 무기를 배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이 미사일 사일로를 전역에 건설해 실제 핵무기 위치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적국의 손익계산을 어렵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 선임연구원은 그러면서 주한미군기지에 있던 과거 핵무기 저장시설을 현대화한다면 미국의 전술핵을 배치한 것과 같은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배치된 미국의 핵무기를 한반도 유사시 재배치하는 ‘전술핵 유연 배치’(연성 재배치)는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한미 양국의 부담도 완화하고 전략적 유연성과 확장 억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다. 러시아는 지난해 6월 벨라루스에 자국 전술핵을 배치했다. 러시아가 자국 영토 밖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1991년 옛소련 붕괴 이후 처음이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똑같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벨기에·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튀르키예 등 나토 5개국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한 것을 거론한 것이다.
독자 핵무장에 대한 논란이 높은 가운데 러시아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을 잇따라 경고하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도 고조시키고 있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는 만약 미국이 계속 도발한다면 북한이 핵실험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마체고라 대사는 스푸트니크 인터뷰에서 “만약 미국의 도발이 계속되고 만약 그들이 점점 더 위험해진다면 나는 북한 지도부가 그들의 국가 방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핵실험을 감행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시나리오”라며 “하지만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과 그 동맹국에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체고라 대사는 앞서 7일 러시아 타스통신 인터뷰에서도 미국이 역내에서 도발적 움직임을 계속한다면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감행하는 결정을 할지도 모른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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