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농민 시위에 깜짝 놀란 유럽연합(EU)이 최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했던 농업 정책들을 대거 폐기했다. 4개월 뒤 열리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농민들을 자극해 표를 얻으려는 극우파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분석이다. 성난 농심(農心)을 달래는 과정에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이 있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다. 그는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정부의 잘못부터 인정했다. “우리는 (농민들의) 불편함에 잘 대응했는가? 분명히 아니다. 우리가 실수했는가? 분명히 그렇다”고 했다. 올해로 35세인 아탈은 17세이던 2006년 중도좌파 사회당(PS)에 입당해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연설문을 썼다. 2016년 당시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에마뉘엘 마크롱이 이끄는 신생 정당 ‘전진하는공화국(LREM·현 르네상스)’으로 옮겨 의회에 입성했고 마크롱 집권 뒤에는 정부 대변인, 공공회계장관과 교육장관 등을 거쳤다. 18년차 정치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정치인답게 ‘공감과 연대’라는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읽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2030세대가 지역구 전략 공천이나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는 경우는 있지만 유럽처럼 체계적인 정치인 육성 시스템을 거쳐 성장하는 경우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당선인 기준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17대 국회 때 51세였던 것이 18대 55.1세로 올라갔고 19대 53.9세로 내려갔다가 20대 55.5세로 다시 올라갔다. 현 21대 국회도 출범 당시에는 54.9세로 조금 젊어졌지만 4년이 지난 지금 환갑을 목전에 둔 58세다. 21대 출범 당시 40세 미만 11명(전체 의원의 3.6%)이 당선됐는데 지금은 7명으로 줄었다. 프랑스(27.4%)를 비롯해 독일(25.3%), 영국(21.7%), 스웨덴(29.5%) 등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설상가상 4월 총선에는 귀환을 노리는 ‘올드보이’들이 유달리 눈에 많이 띈다. 국민의힘에서는 김무성(73) 전 새누리당 대표가 부산 중·영도에 공천을 신청했고 상임고문을 지낸 이인제(76) 전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였던 충남 논산·계룡·금산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해 뛰고 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최경환(69)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민의힘 현역이 있는 경북 경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박지원(82) 전 국가정보원장이 전남 해남·완도·진도에, 정동영(71) 전 통일부 장관이 전북 전주병에 출마를 선언했다. 추미애(66) 전 법무부 장관은 서울 주요 지역구에 대한 전략 공천설이 돌고 있다.
이들 가운데 지역주의와 이념 양극화 등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험지에 출마하거나 시대정신을 내세우는 ‘참어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신 수차례 당적을 옮기는 ‘철새’ 행태로 눈총을 받았거나 범죄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가 사면된 지 몇 달 만에 출마에 나섰다. ‘올드보이’ 비판에 “경험과 경륜이 있어야 의회정치 품격이 산다”고 주장한 어느 정치인은 과거 “60~70대는 투표 안 하고 집에서 쉬셔도 된다”며 노장년층을 폄훼했던 이력이 있다. ‘정권 교체 책임론’을 들먹여 야당 내부 분란을 부추기는 ‘간·붙·쓸·붙’ 정치인도 연일 존재감을 과시한다. 원내 1당 대표를 지낸 사람이 50세 현직 장관에게 “어린 놈”이라며 역정을 내는 나라다.
저마다 경험과 경륜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기 지역구나 텃밭에서 4년 더 누리겠다는 ‘노욕’이라는 비판이 여야를 막론하고 나온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과거의 한토막으로 새날을 더럽히지 말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당부가 새삼 떠오르는 이유다.
올드보이에 대한 피로감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각각 77세, 81세인 전·현직 대통령의 리턴 매치가 유력해지자 공화당 대선 주자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는 ‘고약한 노인들(Grumpy Old Men)’이라는 구호까지 내걸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현재가 과거와 싸우도록 내버려두면 잃는 것은 미래”라고 설파했다. 대한민국의 22대 총선도 현재가 과거와 싸우느라 미래를 잃는 것은 아닌지 벌써 걱정이 앞선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애써 모른 척하는 올드보이들의 귀환, 헤일리의 표현을 빌려 ‘고약한 노인들’의 등판이 영 마뜩잖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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