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선수 출신’ 임원들이 모여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의 거취를 놓고 자유토론을 벌인 가운데 임원진들의 의견이 ‘경질’ 쪽으로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클린스만 경질에 대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결단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14일 YTN 보도에 따르면 이석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임원회의 이후 정몽규 회장과의 독대에서 사퇴를 건의했고, 정 회장은 ‘마땅한 명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임원회의가 구속력 있는 공식 협의체는 아니지만 협회 수석부회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들이 대부분 참석한 만큼 정 회장도 당초 유임 쪽으로 기울었던 입장에서 한발 물러난 셈이다.
이 부회장은 “(임원회의) 분위기가 전부 다 사퇴 쪽으로 (모였다). 나도 그런 얘기를 했다”고 매체에 말했다. 이어 “정 회장님이 나한테 살짝 뜻을 내비치더라.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4강까지 올라갔는데 이런 거를 생각 안 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오는 15일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개최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결정사항을 직접 설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 걸림돌은 역시나 거액의 ‘잔여 연봉’이다. 클린스만 감독만 대략 70억원, 코치진을 포함하면 약 80억원을 줘야 하는 조항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가 매체에 확인했다.
대한축구협회는 계획보다 늘어난 천안축구종합센터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최근 300억을 대출받은 상황이다. 정 회장은 위약금을 물어줄 경우 악화되는 협회의 재정 건전성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에 대한 국민 여론은 거센 상황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이번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요르단에 0대2로 완패해 64년 만의 우승 도전에 실패했다. 한국은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역대 최정예 전력이라는 평가 속에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조별리그 포함 6경기에서 최악의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특히 클린스만 감독은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도 경기 후 웃는 얼굴을 보였다는 등의 비난 속 자격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에서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16강 진출을 지휘한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이 남긴 유산을 클린스만 감독이 훼손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아시안컵 결과에 성난 팬들은 전날인 13일 오전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앞에 모여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과 정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도 벌였다. 이들은 ‘축구협회 개혁의 시작, 정몽규와 관계자들 일괄 사퇴하라’는 현수막을 걸고 “정몽규 회장 사퇴와 클린스만 감독의 즉각 경질”을 외쳤다. 시위에 참여한 강민구 씨는 “클린스만 감독에게 주는 연봉의 기준을 국민에게 떳떳하게 밝히고 위약금 문제에 있어서는 정몽규 회장과 축구협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오죽하면 우리 축구 팬들이 위약금 모금 운동을 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왜 축구협회의 무능한 행정으로 축구팬들이 희생을 해야 하느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몽규 회장이 사퇴할 때까지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며 “만약 정 회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현대산업개발 본사 앞에서도 시위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