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길들이지 못한 별 기억나지? 한쪽 눈이 꼭 마녀 같고 우리 심장에 못을 박던 별 말이야. 거긴 이제 안 갈 거야.”
‘어린왕자’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아내 콘수엘로에게 1931년에 보낸 편지에는 ‘길들이지 못한 별’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주인공이 여러 별을 떠돌아다니다가 장미를 만나 길들이다의 의미를 전달해주는 어린왕자를 연상케 한다. 책이 출간되기 십여 년 전이었던 만큼 부부 간 쌓여온 사랑, 질투, 좌절 등 감정들이 작품으로 이어졌음을 엿볼 수 있다.
신간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는 앙투안과 콘수엘로가 나눈 편지 168통을 모은 책이다. 부부는 193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나 다음 해 결혼했다. 첫눈에 반해 열정적인 사랑을 하지만 처음 만난 지 8년 만에 결별한다. 앙투안이 제2차 세계대전에 조종사로 상공을 누비느라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엘살바도르 출신으로 이미 두 차례 결혼 이력이 있는 콘수엘로는 친구들과 자유로운 교류를 이어가고 이로 인해 앙투안과의 갈등을 겪는다. 앙투안 역시 콘수엘로를 두고 잦은 외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부부의 관계는 오랜 기간에 걸쳐 부부가 서로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만 해도 앙투안은 편지에서 “당신을 세계 곳곳으로 데려갈 거고 우리는 별들을 길들일 거야”고 약속했다. 아내를 ‘황금 깃털’, ‘오이풀’의 애칭으로 부르며 사랑을 속삭였다. 콘수엘로 역시 여러 편지에서 자신의 곁에 없는 앙투안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앙투안은 “기다림은 전쟁보다도 내 몸과 마음을 늙게 만들고 내 안에 당신을 향한 내가 절대 떨쳐낼 수 없는 원망이 어처구니 없이 쌓여가게 만들어”라며 답장하지 않는 아내에게 여러 차례 불만을 드러냈다. 콘수엘로 역시 “가정도 없고 남편도 없이 언제까지 이래야 해? 더는 희망이 없어. 내 삶은 하루 짜리 일간신문 같아”로 답했다.
둘 사이에 끝내 불신이 생겼음을 유추하는 대목도 나온다. 앙투안은 “비서가 (자신을) 보러 온 날이면 종이가 제자리에 있지 않고 문고리가 열림으로 돌아가 있었다”며 “그래서 뭘 알았지? 별것 아닌 어느 어리석은 여자의 주소 하나 알아내겠다고 이런 짓을 한 거야”라고 자신의 서랍을 뒤진 아내를 힐난했다.
파국을 맞는 관계지만 앙투안이 어린왕자를 쓰는 데는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콘수엘로는 편지에서 자신의 애칭인 오이풀을 언급하며 오이풀이 상처 받지 않게 풀밭으로 데려가 꽃과 노래로 옷을 입혀 달라고 요구한다. 어린왕자 속 까다로운 장미가 바로 오이풀에서 시작했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책은 두 사람의 편지 외에도 작가가 그린 어린왕자 삽화, 콘수엘로가 그린 그림 등 다양한 자료가 담겨 있다. 어린왕자, 생텍쥐페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어린왕자를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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