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4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시팩)’ 행사에서 연단에 오르며 마치 백악관을 되찾은 듯 성조기를 끌어안고 키스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는 이날 미국은 범죄와 불법 이민 천지라고 비판한 후 “트럼프를 뽑는 것이 조 바이든과 그 패거리들이 이끄는 지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주장했다.
같은 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공화당의 다섯 번째 경선이 한창 진행 중이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승부는 끝났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CNN에 따르면 이날 자정 개표가 99% 진행된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59.8%의 득표율을 얻어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대사(39.5%)를 큰 차이로 제쳤다. 헤일리 전 대사가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밝혔지만 더 이상의 경쟁은 의미가 없다는 게 공통된 진단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헤일리 전 대사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철저한 ‘무시 전략’을 쓰면서 본선 상대인 조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거친 공세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경선이 종료된 후 불과 4분 만에 연단에 올라 “우리는 11월 5일 대선에서도 승리할 것”이라며 “바이든의 눈을 바라보고 ‘당신은 해고(You're fired)’라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캠프 참모들은 “오늘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경선은 끝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의 텃밭인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전국 표심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지난 열한 번의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한 후보는 무려 열 번이나 공화당 최종 후보로 지명됐다. 특히 헤일리 전 대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고향이자 주지사를 지낸 곳에서 패배한 상황이어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흑인 인종차별이 심했던 ‘딥사우스(Deep South·노예제도를 지지했던 주들)’ 지역인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흑인들이 받아온 차별과 자신의 기소 문제가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하며 흑인들의 표심에 호소했다. 전날 열린 흑인보수연맹(BCF) 행사에서 그는 “흑인들이 내 편에 서 있는 것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 그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수백 명의 흑인 공화당원들로 가득찬 이 방이 바이든의 최악의 악몽”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같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보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본선을 염두에 두고 흑인 표를 뺏어오기 위한 선거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해 12월 AP와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 여론조사에서 흑인 성인 50%만이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는 2021년의 86%와 비교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초점이 본선으로 향하면서 그의 연설에서 흑인과 관련한 언급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 중 한 명으로 공화당 유일의 흑인 상원의원인 팀 스콧이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경선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본선행 티켓을 사실상 거머쥐었으나 줄줄이 이어지는 재판과 민사소송 패소 및 거액의 배상금 부담으로 선거 자금 확보에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너무 많은 법률 비용을 지출하고 있고 그의 선거 자금이 충분하지 않으며 소액 기부가 둔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캠프는 이날도 지지자들에게 수시로 문자를 보내 후원을 독려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