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사기 혐의로 떠안은 천문학적인 벌금의 공탁 의무를 연기해달라는 요청이 기각되면서 그의 재산이 몰수될 위기에 처했다. 이렇듯 커지는 사법·재정 리스크에도 공화당은 외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모양새다. 특히 1·2심에서 거부된 면책특권에 대해 미국 대법원이 심리하기로 결정하면서 그가 대권 도전을 위해 벌이는 ‘시간 싸움’에서 유리한 국면을 맞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뉴욕 항소법원은 28일(현지 시간) 자산 부풀리기 사기 대출 혐의로 부과받은 4억 5400만 달러(약 6054억 원) 규모의 벌금 공탁을 항소심 판결까지 미뤄달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의 요구를 거절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항소심 재판 진행을 위해 필요한 액수를 확보할 수 없다며 그에 한참 못 미치는 1억 달러 상당의 채권만을 내겠다고 밝혔다. 재판을 담당한 아닐 싱 판사는 이 같은 청원을 기각하는 대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욕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한 조치는 해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선거 기부금의 상당 부분을 소송비용으로 투입해온 상황이어서 수천억 원 규모의 벌금을 개인 자산으로 부담할 경우 심각한 재정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뉴욕 검찰은 그가 유예 기한인 3월 25일까지 벌금을 공탁하지 못할 경우 자산 압류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소유한 부동산들은 이미 저당 잡혀 있어 담보가 되기 어려운 것으로 파악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기 대출 혐의와 별개로 성추행 피해자인 칼럼니스트 E 진 캐럴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8330만 달러의 배상금도 지급해야 할 처지다.
사법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강화되는 양상이다. 이날 공화당 내 대표적인 반(反)트럼프 인사로 꼽히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가 대선이 예정된 11월 원내대표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전통적 보수파로 분류되는 매코널 원내대표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을 비롯한 대내외적 안건에서 사사건건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부딪히며 당내 강경파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AP통신은 미국 상원의 최장수 원내 사령탑인 그의 사임 결정에 대해 “공화당의 대대적인 이념적 전환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미국 연방대법원은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혐의와 2021년 1·6 의회 폭동 사태 등으로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면책특권 적용 여부에 대한 심리를 4월 말 개시하기로 하면서 그의 재판 지연 전략에 힘을 실었다. 이로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안정적인 대선 가도를 위해 필요한 면책특권에 대한 기회를 다시 한번 얻은 것은 물론 대법원의 최종 결정과 상관없이 재판을 최소 몇 달간 늦출 수 있게 됐다. 9명으로 구성된 대법관 중 6명이 보수 성향이며 이 가운데 3명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임명했다는 점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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