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전해드렸지만 오늘은 조금 고민했습니다. 너무 불편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짧게라도 두루뭉술하게라도 알려야 하는 내용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동물에 대한 성적 학대입니다. 구체적인 묘사는 최대한 피했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많이 불편하시다면 오늘 기사는 건너뛰시길 바랍니다. 알기 싫은 현실이지만 알아야겠다 싶은 독자님, 목소리 보태주실 독자님들을 위해 정리해 봤습니다.
알고 싶지 않지만 이미 현실
지난해 12월,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동물 성(性) 학대 외국 입법례와 정책과제' 보고서를 펴냈습니다. 골자는 동물 성 학대가 외국에서는 동물 학대의 주요 유형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고, 그에 따른 꼼꼼한 법들이 이미 갖춰져 있어서 한국도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왜 검토해야 하느냐면, 끔찍하게도 이미 한국에서 동물 성 학대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집 개의 성기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찢어지게 한 사건(2017년, 징역 4개월과 치료감호), 암소를 수간해 음부에 상처를 입힌 사건(2018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등등.
다만 '수간'으로 흔히 알려진 행위에 대해, 지난 1997년 피어스 번 서던메인대학교 교수는 '종간 성폭력(Interspecies sexual assault)'이라는 용어를 제안했습니다. 인간과 동물 간의 성관계는 대부분 강요를 포함하며, 동물은 성관계 동의 의사 또는 학대 사실을 표현할 수 없고, 동물을 대상으로 한 성행위가 동물에게 고통을 야기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미국 기준으로 동물 대상의 성폭력은 1990년대 이후 인터넷 확산 및 관련 법 제정의 영향으로 범죄율이 높아졌고, 사람 대상의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재범률이 높다고 합니다. 또 동물 대상의 폭력은 결국 사람에게 향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1973~2015년 사이 동물 성 학대범 456명을 조사한 결과 52.9%는 인간 대상 성폭력, 동물학대, 대인 폭력, 약물 등 다른 범죄 전과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들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성 학대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사람이 동물에게 성폭력을 가했다 해도 그로 인한 신체적 피해에만 법 적용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동물과의 성행위 과정에서 신체적 상해를 입혔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무죄일 수 있는 겁니다.
다만 생각지도 못한 청소년보호법에 동물과의 성행위를 직접 언급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청소년 유해물건 기준에 '청소년에게 인격 비하, 동물과의 성행위 등 반인륜적 성의식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물건일 것'이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습니다.
국내 법의 한계, 그리고 해외 사례들
반면 해외에는 '종간 성폭력'에 대한 다양한 입법 사례가 있습니다. 내용이 생각보다 세세해서(이는 곧 실제로 그런 사건들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놀랐습니다.
특히 미국은 총 49개 주에서 주법으로 동물을 이용한 성행위를 규제하고 있고, 주마다 다르긴 하지만 상당한 중범죄로 간주하는 주가 많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처벌 후 반려동물 소유 금지와 심리치료를 명령하는 주도 다수입니다.
보고서 전문은 어웨어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동물 성 학대를 막기 위해선 우선 동물보호법에 관련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 어웨어의 제언입니다. 법이 없으면 정작 사건이 발생해도 신고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상해 여부'에 초점을 맞추는데 상해 없이도 성 학대는 가능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가정 하에(물론 상상조차 싫지만) 좀더 구체적인 조항을 만들어둬야 하는 이유입니다.
동물 대상 성행위에 관한 영상물 등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해악을 미칠 수 있고, 제3자에게 동물과의 성적 접촉을 강제하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으며(캐나다 등에선 형법 개정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물 성 학대는 재범율이 높다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 어웨어의 지적입니다.
또 사건이 일어난 이후 동물 몰수나 사육 금지 명령 등을 내릴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해둬야 할 겁니다. 현재 동물보호법은 동물 학대 가해자로부터 피해 동물을 격리하도록 돼 있지만, 일정한 보호 기간이 지나 가해자가 반환을 요구하면 돌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동물들이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구용에서도 꾸준히 관련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동물 관련 법과 정책을 연구하는 어웨어의 활동(후원하기)도 눈여겨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관련기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