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서비스가 국내에서 규제에 묶여 있는 사이 해외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의료 제도에 대해 보수적인 접근을 해온 독일·일본마저 규제 빗장을 풀고 원격의료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의 지난해 12월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약 6130억 달러에 그쳤던 전 세계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2023년 1조 2040억 달러로 1조 달러를 넘어섰다. 2026년과 2028년의 시장 규모는 각각 2조 달러와 3조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원격의료가 자국 건강보험 청구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초에 0.2%였으나 2023년 11월에는 5.1%까지 증가했다.
미국은 1996년 원격의료개발법 제정 등으로 원격의료 도입을 법제화했다. 이후 연방보건복지법령을 통해 원격의료 제공 기관의 범위와 제공 대상·서비스, 장비 규격, 비용 부담 등까지 세부적으로 규정하는 표준화를 통해 관련 서비스를 발전시켜왔다. 특히 원격의료인의 자격을 의사뿐 아니라 전문간호사·조산사·임상사회복지사 등에게도 부여해 국민들의 서비스 접근성을 높였다. 우리나라는 원격의료 행위를 의사(한의사·치과의사 포함)에게만 허용하고 있는데 미국처럼 허용 대상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원래 원격의료의 장벽이 높았다. 연방의사협회가 표준의사직업규정을 통해 ‘대면 진료 없는 원격진료를 금지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마저도 2015년 전자보건법을 제정해 원격 서비스를 비롯한 정보기술(IT) 적용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어 2018년에는 연방의사협회가 표준의사직업 규정을 개정해 원격의료 규제를 완화했다. 경증 질환 등에 대해서는 통신 매체를 통해 의사와 환자 간 상담·진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독일은 또 당초 법으로 금지했던 의약품 배송도 가능하도록 법을 고친 상태다.
일본은 1997년 후생성 고시를 통해 의사와 의사 간 원격의료 행위를 허용했다. 이어 2011년에는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2020년 4월에는 모든 질환에 대해 전화 및 온라인을 이용한 진료를 허용했다. 이듬해 8월에는 ‘온라인 진료 특례 조치의 항구화’ 방침을 공표해 코로나19 대유행이 종료된 뒤에도 원격의료가 전면 시행되도록 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종료 후 비대면 진료의 한시적 전면 허용 정책을 종료한 한국과 대비되는 풍경이다. 미국·독일·일본은 모두 고령 환자 증가, 지방 의료 시설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원격의료를 적극 제도화했다. 한국도 이런 나라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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