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반(反) 무슬림’ 논란으로 거센 반발을 일으킨 시민권개정법(CAA) 시행을 4~5월 총선을 앞두고 강행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우려와 마찰이 커지고 있다. 모디 총리가 인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를 결집함으로써 총선에서 3연임에 유리한 고지를 마련하기 위해 CAA를 전격 시행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미 국무부가 CAA와 관련해 “우리는 CAA 시행 발표에 우려하고 있다”며 “법 시행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12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국무부 측은 “모든 (종교) 공동체를 위한 법에서 종교적 자유와 동등한 대우를 존중하는 것은 근본적인 민주적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HR) 대변인도 “우리는 CAA가 근본적으로 차별적이고 국제 인권 의무에 위배된다는 점에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CAA 시행이 국제인권법에 부합하는지에 관해 검토 중이라고 강조했다.
인도 동북부 아삼주을 포함한 일부 주에서는 이날 CAA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됐다. 또 야권 일각에선 집권 인도국민당(BJP)이 정치적 이득을 보기 위해 CAA 시행을 발표했다며 반대 투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인도 정부는 앞서 지난 11일 관보에 CAA가 제정돼 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CAA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2014년 12월 31일 이전 인도로 들어와 불법 체류 중인 힌두교·불교·기독교도 등 6개 종교 신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게 골자다.
문제는 시민권 부여 대상이 되는 종교에서 이슬람교를 뺐다는 점이다. 2019년 법안이 처음 제정될 당시 인도 내 무슬림 인구는 2억명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데, CAA가 이들에 대한 차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또한 CAA가 시아파 무슬림과 같은 무슬림 소수파는 물론 무슬림이 소수인으로 탄압받는 미얀마 등 출신자는 시민권 부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2019년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자 수도 뉴델리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시위에는 인도 내 여러 종교 관계자들이 두루 합류했고, 이들은 해당 법이 인도 헌법의 토대인 '세속주의'를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종교 간 폭력사태가 촉발되면서 수십 명이 숨지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정부는 법 시행을 연기했다. 그러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시행하게 된 것이다.
모디 정부는 주변국에서 인도로 피신한 종교적 소수자에게만 시민권을 주는 것으로 인도 시민에게는 악용되지 않을 것이라며 시민권 개정법이 인도주의적 내용을 담은 것이라고 항변해왔다. 이번 시행과 관련해서도 BJP는 오랫동안 요구해온 사안이 실현되게 됐다며 환영했다. 모디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3연임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연방의회 제1야당 인도국민회의(INC)는 정부가 총선 직전에 법 시행을 발표한 것은 표심을 양극화하려는 속셈이라며 비판했다. BJP가 법 시행으로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를 결집, 4∼5월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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