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 2부 투어에 내려갔다가 올해 1부에 복귀한 전지원(27)에게 2부 생활을 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은 셈이냐고 물었다. 전지원은 “진짜 외롭기는 했고 힘든 투어인 것도 맞다”면서도 “눈물 젖은 빵을 먹은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최근 만난 전지원은 “꼭 딛고 올라가겠다는 마음이 강했기에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다. 2부에서 사람 냄새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경험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전지원은 열다섯에 국내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하고 우승 특전으로 호주 유학을 갔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꽃을 피웠다. 2020시즌의 그는 LPGA 투어의 한국 국적 루키 가운데 유일한 풀시드 선수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투어가 대폭 축소됐고 이듬해는 과사용으로 인한 손가락 인대 파열로 또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드를 잃고 2022년 퀄리파잉 스쿨마저 떨어졌을 때는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심각하게 고민도 했었다. 고민의 끝은 ‘딱 1년만 영혼을 갈아 넣어 한 번 해보자.’ 대회가 없어 쉬는 주에도 아침 7시에 퍼스널 트레이닝(PT)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하루 2시간씩 퍼트 연습을 했다. 샷과 쇼트 게임을 다듬는 3~4시간까지 휴대폰 한 번 안 보고 몰두했다.
그렇게 스스로 몰아붙이는 사이 2023시즌 ‘우승 2개’를 목표로 세웠는데 2부에서 정말 딱 2승을 거뒀다. 어렵기로 악명 높은 피트 다이 설계 코스에서 대회 18홀 최소타인 8언더파 64타를 치기도 했다. 그렇게 2년 만에 당당히 되찾은 LPGA 투어 카드로 전지원은 설레는 시즌 초반을 보내고 있다. 1월에 복귀전을 치렀고 이번 주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열리는 퍼힐스 박세리 챔피언십에도 출전한다.
155㎝ 키에 ‘작은 거인’ 별명을 지닌 전지원은 “이만큼 열심히 했다면 그만큼의 성과는 반드시 나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빨리 나오느냐, 좀 늦게 나오느냐 차이일 뿐”이라고 했다.
2부 투어 대회장은 보통 ‘시골’에 있다. 공항과 멀어 차라리 운전이 낫다. 전지원은 10시간씩 직접 운전해가며 투어를 뛰었다. 고단한 생활이었을 텐데 그는 “동료들이랑 카풀도 하면서 나름 재밌게 보냈다”고 했다.
2부 투어에는 호스트 제도가 있다. 대회장 인근 주민들이 출전 선수에게 1주일 간 숙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형편이 넉넉지 못한 선수에게는 고마운 제도다. 전지원도 지난해 열 번가량 이 제도를 이용했다. 코로나19가 투어를 강타했을 때 제한된 공간에만 있어야 하는 ‘버블’을 겪었던 전지원은 “그리웠던 사람 냄새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경험이 됐다”고 돌아봤다. “숙식을 제공 받는 동안 딸이 생긴 느낌이라고 말해주는 분도 있었어요. 1부 시드를 다시 땄다는 소식에 축하 연락을 주시고 꼭 다시 놀러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진심으로 응원 받는 느낌이 어떤 건지 새삼 실감했어요.”
새 코치인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김도훈의 지도로 아이언 샷을 정교하게 다듬은 전지원은 “올해 최소 1승을 하고 올해의 선수 포인트 20위 안에 들면 스스로 칭찬해줄 만할 것 같다”고 했다. “첫 우승을 쟁취하는 순간부터는 2승이 멀지 않을 거라는 확신 같은 것도 생겼다”는 그는 “멘탈이 무너지는 게 투어 생활에 있어 가장 무서운 것인데 지금은 그런 일을 극복한 뒤라 내면이 강해진 느낌이 있다. LPGA 투어 한국 선수들 가운데 나이로 중간쯤인데 한국 군단이 합작 승수를 늘리는 데 꼭 힘이 되고 싶다”고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