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대상 육아휴직 지원 정책이 외면받고 있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계에서 주변 눈치를 보느라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중소기업 종사자의 육아휴직을 독려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경북도가 올 상반기 ‘나의 직장동료 크레딧’ 사업에 참여할 기업을 최근까지 모집한 결과 14곳이 지원하는 데 그쳤다. 이 사업은 도내 중소기업 종사자에게 총 180만 원의 육아휴직 업무대행수당을 지원한다. 직장 동료가 휴직자의 일을 더하고 추가 수당을 받는 구조다. 경북도는 이 사업에 대한 올해 예산으로 5500만 원이 책정됐지만 2500만 원만 우선적으로 집행하게 된 상황이다. 경북도 관계자는 “여전히 중소기업에서 육아휴직을 쓰려는 수요 자체가 적다”면서 “지난해에 사업을 처음으로 시행했는데 수요 부진 때문에 올해 예산을 늘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충북도가 실시한 육아휴직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도 저조했다. 지난달 말까지 ‘남성 육아휴직 1호 기업 지원’ 사업 공고를 진행한 결과 신청 기업이 13곳에 불과했다. 종사자를 포함해 도내 중소기업 6곳을 대상으로 최대 1000만원을 무상 지급하는데 지원 자체가 저조했다.
충북에서 장비 제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A사 대표는 “혼인 시기가 점차 늦어지면서 남성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쓸 시점이 되면 회사의 중요한 실무를 맡는 과장·대리 직급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 인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며 “그렇다고 육아휴직을 막을 수는 없으니 대체자를 구하지 못하고 동료들이 업무를 분담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2022년 기준 일 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5~9인 규모 사업체 가운데 ‘육아휴직이 필요한 사람도 전혀 사용 불가능’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23%에 달했다. 이어 10~29인 사업체 19.2%, 30~99인 사업체 14.5%, 100~299인 사업체 10.6%인 반면 대기업 위주의 300인 이상 사업체 중에선 1.9%가 육아휴직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응답했다. 대기업 종사자도 육아휴직에 대해 고민하긴 하지만 중소기업 종사자에 비해선 사용하는 데엔 거의 무리가 없다는 얘기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현장에선 지원 혜택을 파격적인 수준으로 개선해야 육아휴직이 활성화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 대상 지원 수준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올해부터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 육아휴직자의 업무를 대신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보조금(응원 수당)을 기존의 연간 1인당 10만엔(약 89만 원)에서 최대 125만엔(약 1106만 원)으로 12배나 인상했다.
전문가들 역시 정부의 지원책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입을 모은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는 “일·가정 양립 제도는 한국이 다른 주요국에 비해 가장 뒤처진 분야”라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 육아휴직자 업무대행 수당을 신설하고 대체인력에 지급할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턴제도나 파견제도 등을 도입해 대체인력 중개 제도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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