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은 좀 비싸요. 1층 플로어(입석)가 장당 최소 40만~50만 원이에요.”
“이 공연은 매크로가 의미 없어요. 원하시면 쓰고요. 신고요? 지금까지 한 번도 (예매) 취소된 적 없어요.”
22일부터 매크로를 사용한 암표 판매 행위를 전면 금지한 공연법 개정안이 시행되지만 벌써 관련 업계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암표 관련 수법이 고도화·다양화한 만큼 추가적인 규제 도입과 함께 처벌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공연법 개정안 시행이 임박한 최근에도 암표 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개정안의 규제 범위가 ‘매크로 사용’에 그쳐 여전히 처벌 사각지대가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가 번개장터와 중고나라, X(옛 트위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연락한 암표 관련 업자들은 “매크로만 안 쓰면 된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현재 온라인상에는 예매 의뢰를 받고 타인의 계정으로 로그인해 좋은 좌석을 잡는 대가로 돈을 받는 ‘대리티케팅’, 좌석 선택 페이지로 바로 이동 가능한 ‘직접링크(직링)’ 판매 등 각종 수익 활동이 만연하다.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 웃돈을 얹어 공연을 가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인 셈이다.
대리 티케팅 업자 A 씨는 “매크로는 선택 사항이다. 없이도 가능하다”면서 정가 13만 원인 한 밴드 공연의 좌석을 잡아주는 대가로 15만 원 이상을 요구했다. 또 다른 업자 B 씨는 정가 11만~15만 원 사이인 한 아이돌 그룹 공연의 좌석을 확보하는 대가로 40만 원을 제안한 뒤 “이 정도면 저렴하다. 나중에 양도 표를 구하게 되면 100만 원이 넘는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신설된 공연법 제4조의2항(입장권등의 부정판매 금지 등)은 매크로를 사용해 예매한 입장권·관람권 등에 웃돈을 주고 부정 판매·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위반 시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흥행장(공연장), 경기장, 역, 나루터 등지에서 웃돈을 받고 티켓을 되파는 경우’로만 암표 매매를 규정한 기존 경범죄처벌법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 데 따른 변화다.
하지만 매크로를 사용했을 때조차 처벌을 피할 여지가 남아 있다. 우선 부정 판매를 규정하는 ‘상습성’과 ‘영업성’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 몇 회 이상 클릭을 하고 얼마 이상의 웃돈을 얹어서 판매했을 때 처벌 요건을 충족하는지에 대한 하위법령이 없어서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사실 매크로가 의심된다는 신고 내역을 보고 바로 위법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 “철도표 등 다른 분야의 판례를 보고 비슷한 기준을 세우지 않을까 싶은데 최종 판단은 법원의 영역이기에 당장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공연 업계 역시 지난해부터 개정안에 대해 ‘개인 업자가 처벌을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암표 조직이 매크로 이용, 알선, 판매 행위를 각각 분담하는 경우에도 적발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매크로 예매표를 ‘세탁’하는 경우에도 단속망을 피한다. 이미 온라인에서는 공연법 개정안에 대비해 ‘아이디 옮기기(아옮)’를 하는 꼼수법이 만연하다. 예컨대 A 씨의 계정으로 매크로를 사용해 표를 확보한 뒤 B 씨의 계정으로 해당 표를 양도하면 A 씨의 매크로 사용내역은 사라진다. 이후 B 씨의 티켓을 구매자 C 씨에게 팔면 위법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불법 암표 거래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암표 모니터링센터에 신고된 공연 암표 건수는 2020년 359건에서 지난해 2161건으로 6배 넘게 뛰었다. 이에 업계에서는 규제 범위를 확대하고 처벌 강도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연욱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사무국장은 “국내 리셀(재판매)사이트에서 최소한 불법 암표에 대한 이용약관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지난해 자체 모니터링 결과 한 외국 가수의 공연 암표 거래로 리셀 사이트 한 곳에서 발생한 불법 이익만 2000만 원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관련 업계와 지속적으로 논의하며 새로운 수법을 공유하는 등 협조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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