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진행 중인 가자지구에서 식량 위기가 재앙적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쟁으로 인프라가 무너지고 구호 물자 공급의 제한이 커지면서 대규모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일각에선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구호품 반입을 막아 기아를 초래했다는 ‘전쟁범죄’ 의혹도 제기된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세계은행(WB)은 가자지구에서 ‘재난’에 처한 이들이 110만 명에 이른 것으로 파악한다. 급성 영양실조, 사망 등이 이 경우에 포함되는데 WB 분류 체계에서 위험 심각성이 가장 높은 단계다. 가자지구 인구가 약 230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구 절반 가까이가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는 의미다. 이어 38%가 즉각적 조치가 필요한 ‘긴급’으로 나타났고, 12%는 세 번째 단계인 ‘위기’에 처한 상황으로 조사됐다. WB은 “조사 결과 거의 모든 가구가 매일 식사를 거르고 2세 미만 어린이의 상당수가 급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등 우려스러운 모습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사태 심각성은 더해 질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단 지역 라파에서 군사 작전을 밀고 계획대로 밀고 나갈 방침이기 때문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일(현지시간) “라파 군사작전 계획은 이미 승인했고 조만간 민간인 대피 계획 승인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라파 진입을 준비 중으로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라면서도 “우리는 전력을 다해 작전에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국제기구 ‘통합식량안보단계’(IPC)는 라파 작전으로 전쟁 확산 시 3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식량 위기 심각성의 최고 단계인 재앙·기근에 처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전쟁 범죄’라는 지적도 많다.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구호 물자 진입을 막아 ‘제노사이드’(특정 집단 말살)에 이르게 한다는 주장이다. 가디언은 이날 “이스라엘에 대한 인위적 기근 혐의가 늘어나는 증거로 뒷받침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자지구 식량 반입 추이를 살펴본 결과 일부 트럭만 진입 승인을 받고 있다는 게 그 근거다. CNN에 따르면 가자지구에 기본 수준의 식량만 배포하더라도 하루 최소 300대의 트럭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수송에 나서는 차량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게 다수의 관측이다. 만약 이 같은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전쟁범죄에 해당한다는 게 다수의 분석이다. 국제형사재판소는 구호물자를 고의로 방해하는 것을 포함해 생존에 꼭 필요한 물품을 고의로 빼앗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휴전 중재에 주력하는 양상이다. 이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이번 주 이스라엘 등을 포함한 중동 지역을 방문한다. 아울러 미국은 가자지구 전쟁의 즉각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제출했다. 안보리 결의안은 휴전에 대한 강제조치로 이어질 수도 있어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강한 압박성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블링컨 장관은 “가자지구의 200만 인구 모두가 심각한 수준의 심각한 식량 불안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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