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가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처음으로 언급했다. 다만 테러로 인해 이득을 볼 집단은 따로 있다면서 우크라이나와 서방 세력이 배후에 있다는 의혹 제기를 이어갔다.
26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테러 대책 회의에서 “우리는 급진 이슬람주의자 손에 의해 이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테러 참사와 관련해 급진 이슬람주의자 소행으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동안 푸틴 대통령은 이슬람국가(IS)보다 우크라이나 배후설에 힘을 실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총력을 기울였던 만큼 자국 내 안보에 무능했다는 비판 여론을 차단하고 더 나아가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차원에서다. 하지만 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호라산(ISIS-K)이 구체적인 증거까지 내밀며 자신들이 벌인 테러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힌 데다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 위협이 갈수록 커지면서 이를 부인하기만 할 수 없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물론 이번에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등 서방 세력과 연관성을 강하게 의심했다. 그는 “이제는 누가 그것(테러 사건)을 명령했는지를 알고 싶다”면서 “테러리스트들이 왜 범죄를 저지른 뒤 우크라이나로 가려고 했는지,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누구였는지 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모스크바 테러 공격에 우크라이나 흔적이 없으며 IS 구성원이 자행했다는 점을 설득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테러 참사의 책임을 사실상 우크라이나와 서방으로 돌린 셈이다. 테러 피해 규모는 늘어나 이날 현재 139명으로 집계됐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서는 사형 부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테러 혐의로 기소된 4명의 피고인들이 심한 고문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오면서 논란을 촉발시킨 가운데 사형 주장까지 나오는 것이다. 러시아는 형법상으로 사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1996년 이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다. 하지만 정부 고위직까지 나서서 사형 부활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텔레그램을 통해 “그들을 죽여야 할까? 죽여야 한다. 그리고 죽일 것”이라고 했다. 크렘린궁은 사형 논의에 대해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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