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이종섭 주(駐)호주대사의 면직안을 재가했다. 대사 임명 25일 만이다. 총선을 앞두고 여권을 중심으로 여론 악화를 의식해 ‘사퇴’ 요구를 지속적으로 했고, 이에 윤 대통령이 사의를 전격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이날 알려드립니다를 통해 “윤 대통령이 오후 외교부 장관이 제청한 이 대사의 면직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이 대사를 대리하는 김재훈 변호사는 앞서 이날 기자들에게 공지를 보내 “이 대사가 오늘 외교부 장관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외교부는 이날 오전 이 대사의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으며, 윤 대통령은 외교부의 보고를 받은 뒤 이를 재가했다.
윤 대통령이 해병대 채 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온 이 대사의 사의를 전격 수용한 것은 이 대사의 거취가 여당을 계속 짓눌러왔기 때문이다. 야당을 중심으로 ‘도주’ 프레임을 짜 공세를 이어가자 수도권 등 중도층 이탈 현상이 발생했고 총선이 11일 남은 상황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총선 패배로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줬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대통령실은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받아온 이 대사의 사퇴에는 거리를 뒀던 게 사실이다. 오히려 공수처가 이 대사 소환을 포함한 구체적인 조사 계획도 없이 출국금지만 연장한 데 대해 강한 불만감을 드러냈다.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수사 내용이 유출됐다며 정치적 유착 의혹도 제기했다.
대통령실은 이 대사가 귀국 전 '소환하면 언제든 귀국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야권의 '해외 도피'라는 주장을 악의적인 정치 공세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 대사의 사퇴가 자진 사퇴 형식이지만 사전에 대통령실과도 이미 조율했다는 게 정설로 통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아침 장동혁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희들이 여당으로서 국민들께 부족했던 점들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실에 국민들의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부분도 많다”고 말하며 이전과 달라진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 대사의 사의 표명은 한동훈 위원장이 전날 국민 눈높이와 민심 존중을 위해 대통령실에 이 대사의 사퇴를 직접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선 사전투표일까지 1주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야권 우위로 판세가 기울자 윤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후 경기 안산시 지원유세에서 “이종섭 전 대사가 자진사퇴했다”며 “여러가지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를 보라. 여러분 무엇인가 불편하고 이상하다 느끼면 우리는 한다. 저는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냥 한다. 여러분 눈치만 본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지금까지 검사, 장관 생활하면서 누구 눈치보며 살지 않았다. 정말 그런 적 없다”며 “정말 제 ‘쪼’대로 살았다. 운도 좋았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그런데 저는 요즘 정말 여러분 눈치 많이 본다. 정말 눈치 많이 본다. 지나가다 악수하는 분 눈빛 보고 버스 줄 보고 어떤 이슈에 대해 어떤 댓글다는지도 본다”며 “국민의힘은 국민의 눈치만 본다. 우리는 여러분의 눈치를 본다. 여러분에게 선택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 대사 사퇴를 대통령실에 직접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장은 앞서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 사건’ 피의자 신분이던 이종섭 전 국방장관이 주오스트레일리아 대사에 임명돼 ‘도피성 출국’이란 비판이 제기되자 조기 귀국을 촉구한 바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