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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 잡스 떠난 애플, 혁신도 사라지다

■애프터 스티브 잡스(트립 미클 지음, 더퀘스트 펴냄)

'살림꾼' 쿡 '영혼의 동반자' 아이브

아이팟·아이폰 등 혁신으로 전성기

'워치' 방향성 마찰 아이브 떠나며

디자인 우선시하던 문화도 사라져

후계자 쿡, 소프트웨어 매출 주력

수천조 실적에도 "영혼잃어" 비판





2011년 10월 19일. 미국 실리콘밸리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사옥 인피니티 루프에 대형 흑백사진 현수막이 걸렸다. 자신의 첫 작품인 ‘매킨토시’를 안은 채 장난기 어린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젊은 날의 스티브 잡스 창업자였다. 검정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무대에 올라 입을 뗐다. “헤이 조니, 나에게 바보 같은 생각이 있어”라며 잡스가 평소에 하던 말을 따라하며 함께한 일화들을 풀어내던 그는 잡스가 1998년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부터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등의 디자인을 책임진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였다. 그의 말에 울고 웃던 직원들은 존경심으로 가득 찼지만 사무적이었던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추도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챘다. 쿡 CEO가 잡스에게 믿음직한 후계자였다면 아이브는 ‘영혼의 동반자’였던 것이다.

2011년 미국 실리콘밸리 애플 사옥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6만여명의 직원들이 잡스를 추도하고 있다. /애플 유튜브 갈무리


조너선 아이브 애플 전 디자이너/애플 유튜브 갈무리


애플은 조너선 아이브, 스티브 잡스, 팀 쿡 세 사람이 ‘삼두마차’를 이뤘을 때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뛰어난 디자인에 대한 아이브의 고집과 놀라운 제품을 만드는 데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해주고 지원하는 잡스의 의지, 그리고 이를 생산까지 구현하는 공급망 통제력을 발휘한 쿡은 환상의 팀을 이뤘다.

이들의 호흡이 본격적으로 빛을 본 것은 2002년 기존 MP3 플레이어에서 탈피한 베스트셀러 ‘아이팟’이었다. 이후 2007년부터 전 세계가 소통하는 방식을 바꿔둔 ‘아이폰’의 여정으로 이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즈(NYT)에서 기자로 일하며 애플을 취재한 저자 트립 미클은 신간 ‘애프터 스티브 잡스’를 통해 쿡 CEO와 아이브를 잇던 잡스라는 존재가 사라진 뒤의 두 사람의 변화와 고군분투를 집중 조명한다.

‘다음에는 무엇을 내놓을까’ 잡스가 사라진 애플에는 늘 투자자들과 비평가, 애플 팬들의 의구심이 따라다녔다. 쿡과 아이브는 늘 불안과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결전의 프로젝트로 준비해 역사상 최대 판매량을 기록한 애플 워치도 그런 불안감에서 탄생했다. 2년에 걸친 준비 끝에 2014년 공개된 애플 워치는 잡스의 ‘한 가지 더(One more thing)’에 대한 향수를 충족시켰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진다. 애플 워치를 패션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었던 아이브와 피트니스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었던 쿡의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쿡이 아이브의 전문성을 그대로 인정해줬음에도 잡스의 보호 아래 있을 때 발휘되던 통제력과 영향력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느낀 아이브는 애플을 떠나게 된다.

미국에서 출간될 당시 책의 부제는 ‘애플이 어떻게 수천조원의 회사가 됐지만 영혼을 잃게 됐는가(How Apple Became a Trillion-Dollar Company and Lost Its Soul)’였다. 저자가 파악한 사라진 애플의 영혼은 디자인이 우선시되는 문화, 기능적·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작은 조직 문화다. 디자인 애호가인 잡스는 디자인이 우선시되는 새로운 작업 방식을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엔지니어링이 우선시되는 어떤 실리콘밸리 기업과도 달리 디자인에 최대한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하는 ‘예술학교’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아이폰 다음'에 대한 의구심에 시달려야 했던 쿡 CEO는 자체적인 해답을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서 찾았다. 이후 애플 피트니스, 애플 뮤직, 애플 티비 플러스 등 구독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매출을 끌어올린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 조직의 중요도는 낮아지고 조직이 방대해지는 일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엔지니어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시작한 애플카 프로젝트 또한 1000여명의 조직 규모에 3명의 리더 간 충돌, 디자인 등에 관여하지 않는 쿡 CEO들로 인한 일부 팀들의 의욕 상실로 인해 예고된 실패의 길을 걸었다.

올 초 출시된 애플의 공간 컴퓨터 ‘비전 프로’ 역시 아이브가 있었다면 다른 디자인이 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에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한 것도 애플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동시에 무거운 전임자의 무게를 극복한 쿡 CEO에게도 변명의 기회를 주고 싶다. 잡스가 쿡 CEO에게 남긴 말은 이렇다. “저라면 어떻게 할 지를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옳은 일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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