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예상을 넘는 경제 호황을 보이면서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는 시점이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미국보다 이른 시점에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비롯한 유럽의 주요 통화 당국자들이 금리 인하를 시사하고 나서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16일(현지시간) 미국 C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디스인플레이션(물가 둔화) 과정을 관찰하고 있다”면서 “2025년 중반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디스인플레이션이 예상대로 진행되고 큰 충격이 없다면 제한적 통화정책을 완화할 시기로 향하고 있다”면서 “상당히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최근 국제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 등과 관련해 라가르드 총재는 ”모든 원자재 가격이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그러한 움직임에 극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ECB는 앞서 11일 기준금리를 연 4.50%로 동결한 바 있다. 다만 ECB는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지속해 수렴한다는 확신을 갖는다면 통화정책 제한 수준을 낮추는 게 적절할 것”이라며 평가해 금리 인하를 곧 시작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시장에서는 ECB가 오는 6월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해 연내 세 차례 통화 완화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ECB의 다른 당국자들도 금리 인하에 무게는 두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프랑수아 빌르루아 드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도 이날 “큰 충격이나 서프라이즈가 없다면 6월 초에 첫 금리 인하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로베르트 홀츠만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가브리엘 마크루프 아일랜드 중앙은행 총재 등도 금리 인하를 강조하는 인물로 꼽힌다.
영국도 올 여름께 기준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는 최근 IMF와 가진 인터뷰에서 영국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그는 “인플레이션 역학은 유럽과 미국이 다르다”면서 “영국에서는 여전히 공급 충격, 전쟁 영향,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우 물가 우려가 큰 미국과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 발언이라고 블룸버그는 해석했다. 영란은행의 부총재인 클레어 럼바델리도 “통화 정책 완화가 분명히 유럽 전역의 여행 방향”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럽이 조기 금리 인하에 나서더라도 인하 폭과 횟수는 제한적이다는 관측이 많다. 이날 라가르드 총재는 6월 이후 후속 인하 조치와 관련해 “나는 그 점을 매우 분명히 밝혔으며 고의적으로 어떤 금리 경로도 미리 약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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