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일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50~100% 범위 내에서 자율 조정할 수 있게 해달라’는 6개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전격 수용함에 따라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 있던 의정(醫政) 갈등이 점차 해소될지 관심이다. 올해 입시인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에 한해 국립대 총장들의 ‘자율 조정’ 건의를 수용하는 방식이지만 정부가 올 2월 초 발표 이후 2개월 이상 고수하던 ‘2000명’이라는 숫자에 대해 한발 뒤로 물러섰기 때문이다.
아직 의정 갈등의 당사자인 대한의사협회와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이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의미 있다”며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꽉 막힌 의대 정원 증원 갈등을 풀어내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이제 관심은 6개 국립대를 제외한 남은 국립대와 사립대의 동참 여부와 최종 의대 정원 증원 숫자다. 전체 의대가 자율 조정을 통해 합리적인 의대 정원 증원 숫자를 도출할 경우 기존 2000명에서 물리적으로 최대 1000명까지 줄어들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후 의대 증원 관련 특별 브리핑에서 “전국 32개 의과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2025학년도에 한해 증원된 규모의 50~100%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밝혔다. 전일 경상대 등 6개 국립대 총장들이 제출한 건의를 전격 수용한 조치로 전체 32개 의대로 대상을 넓혔다. 한 총리는 “의료계의 단일화된 대안 제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의료 공백으로 인한 피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민과 환자의 요구를 무겁게 받아들여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정부가 6개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하며 사실상 의정 갈등의 ‘출구전략’을 마련한 것은 더 이상 의료 공백이 장기화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추진했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의료 공백이 두 달 이상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현장 의료진도 지쳐가고 있다. 1만 3000명에 달하는 전공의들의 복귀가 미정인 상황에서 이달 25일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과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이 현실화되면 향후 파장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정부는 의대 증원 자율 모집은 2025학년도 입시에 한정된다고 밝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질의응답에서 “의료계의 원점 재검토 요구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의료계가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해 통일된 방안을 가져오면 그 이후 재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전국 32개 의대가 자율적으로 의대 정원 증원 축소에 적극 동참하면 올해 입시인 2025학년도 모집 규모는 최대 1000명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9개 지방 거점 국립대 의대 정원은 내년에 총 806명 늘어나는데 이 중 절반이 줄어들면 내년 증원 규모는 1597명이 된다. 여기에 사립대들까지 기존 증원 규모의 50%만 뽑을 경우 증원 규모는 최대 1000명까지 줄일 수 있다. 사립대들이 증원된 의대 정원을 얼마나 줄일지는 미지수지만 결국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이번 조정안이 학생과 전공의들의 복귀를 이끄는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번 조정안을 근거로 해서 개별 대학들이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돌아오도록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더 커졌다고 생각한다”며 “의대 학장, 대학 총장, 교수들과 협력해서 한 명도 빠짐없이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 장관도 “당의 건의에 따라 전공의에 대한 처분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다”며 “향후 의료계와의 협의 과정 등 상황 변화를 고려해 처분 절차 재개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다음 주 공식 출범을 예고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의대 정원 증원과 지역·필수의료 정책 과제들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특위는 민간위원장을 비롯해 6개 정부 부처 관계자와 20명의 민간위원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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