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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출 수 없는 하청보호…업종 상생협약, 산별교섭 ‘제3의 길’될까

고용부, 조선업 등 5개 업종으로 점진 확산

원청, 하청 자율 지원…임금불평등 해소 기여

단체교섭, 혜택 더 많지만…개별 기업에 국한

노조 밖·하청 근로자 보호 절실…현실적 대안

이정식(앞줄 가운데) 고용노동부 장관이 25일 경기 성남시 삼성중공업 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조선업 상생협약 1주년 보고회에서 최성안(앞줄 왼쪽 다섯번째) 삼성중공업 대표, 이상균(앞줄 왼쪽 네번째) HD현대중공업 대표, 권혁웅(앞줄 오른쪽 네번째) 한화오션 대표 등 원·하청 대표들과 손을 잡고 있다. 사진제공=고용부




고용노동부의 지역·업종 상생협약이 산별교섭이 꽉 막힌 상황의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노동계의 숙원인 산별교섭은 단일 사업장이 아니라 여러 사업장과 업종의 단체교섭 방식으로서 하청 근로자 보호와 임금 불평등 해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업 구조와 노사 지형을 볼 때 도입하는 데 너무 어려움이 큰 상황이다. 게다가 하청 근로자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더 심각해지면서 기약 없는 산별교섭 결론을 기다릴 수도 없다는 지적이다.

2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2월 고용부는 미래항공·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국항공우주산업(KAI)·경상남도와 ‘항공우주제조업 상생 협력 확산을 위한 공동 선언’을 했다. 상생 협약을 맺은 산업은 항공우주제조업, 조선업, 석유화학 산업, 자동차 산업, 식품업 등 5곳으로 늘었다. 협약 기관과 기업은 공동 선언문을 통해 원·하청 협력 체계 구축을 약속했다. 원청 업체는 인력, 근로 조건, 기술력을 협력 업체에 지원하고 협력 업체도 역량을 강화해 원청을 돕는 식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선언식에서 “원·하청 상생은 규제나 강제로 해결할 수 없고 자발적인 협력이 관행화될 때 지속 가능하다”며 “중앙 단위에서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중층적인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5개 업종 중 상생협약이 가장 단단하게 맺어진 곳은 조선업이다. 조선업 상생협약은 2022년 10월 정부의 조선업 이중구조 개선대책 후속조치로 이뤄졌다. 조선업은 불황으로 인해 불공정 거래, 인력난, 하청 저임금, 임금체불, 산업재해 증가 등 총체적 난국에 빠졌었다. 작년 2월 체결된 상생협약은 1년 동안 조선업 일터를 바꿨다는 평가다. 임금 체불을 막는 제도인 ‘에스크로제’는 올해 상반기까지 조선 5개사가 모두 도입한다. 협력사 임금은 작년 평균 7.5% 올라 최저임금 인상폭 5%을 넘겼다. 하청 복지를 도울 공동근로복지금의 원청 부담 규모도 10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확대됐고, 종사자 수도 1년 만에 1만5000명 늘었다. 조선업 상생협의체에 참여한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생협약은 신뢰와 상호존중의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며 “협약 2년차, 3년차에도 지속가능한 상생을 위해 돕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대기업·공공부문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됐다가 기업교섭이 일반화됐다. 이런 상황은 노조가 있는 대기업·공공부문 근로자와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 근로자와의 임금 격차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단체교섭은 근로자 스스로 복지 개선을 이루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 초반으로 대부분 대기업·공공부문에 쏠려 있다. 이런 임금 불평등을 노동시장 이중구조라고 칭한다. 고용부가 작년 5월 발표한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2022년 6월 기준)에 따르면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70.6%로 전년보다 2.3%포인트 낮아졌다. 4년 만에 다시 임금격차가 확대된 것이다. 300인 이상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300인 미만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43.7%에 머무르면서 2019년(42.7%) 수준으로 돌아갔다. 더 큰 문제는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16.9%로 9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산별교섭은 근로자 보호뿐만 아니라 노사 관계도 긍정적으로 이끄는 효과가 있다.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가 작년 9월 민주노동연구원을 통해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독일 파업과 현황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노조가 강하지만, 노사 관계가 안정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산별교섭 체계가 안착됐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 보다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을 존중하는 문화도 자리잡았다. 이 구조와 인식은 노사 갈등이 파업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한 힘이었다. 2022년 파업 중에서 교섭 결렬로 인한 실 파업 건수는 7건에 불과했다. 작년 파업 중에서 교섭 결렬로 인한 실 파업 건수는 7건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노사 대화 방식이 산별교섭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은 끊임없지만, 논의는 뚜렷한 성과없이 늘 제자리다. 산별교섭이 이뤄지려면 그만큼 많은 근로자와 업종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도록 조직화 돼야 한다. 노동계는 그동안 비정규직·청년·여성 등 다양한 계층을 노조 안 근로자로 껴안으려고 했지만, 아직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또 산별노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규모·업무·능력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 단일 임금체계로 만들지가 난제다.

상생협약은 단체교섭과 비교할 때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다. 협약은 원청이 복지, 인력, 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하청에 혜택을 약속한다. 1개 원청이 수백개의 하청을 거느리는 우리 산업 구조를 볼 때 여러 하청에 혜택이 고루 퍼진다는 것이다. 단점도 명확하다. 단체협약과 달리 상생협약은 법적 효력이 없다. 게다가 상생협약의 혜택은 단체교섭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정부가 상생협약 이행을 얼마나 철저하게 점검하는 지가 관건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란봉투법 논란이 있듯이 초기업 단위로 원·하청 단체교섭을 의무화하거나 강제할 경우 여러 부작용이 있다"며 “대화 테이블을 통해 스스로 합의나 해법을 찾는 것은 진일보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물론 (상생협약은) 효력이나 방식 모두 단체교섭과 비교할 수 없다"면서도 “노사의 자율적인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 노사가 극단에서 제3의 길로 간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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