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인천공항본부세관 특송물류센터. 14개 컨베이어벨트로 각종 물량이 쏟아지자 엑스레이 판독실 직원들의 눈이 모니터로 쏠렸다. 이동하는 특송 상자에 마약 등 불법적인 물품이 있는지 음영으로 구분하는 작업이었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0초 안팎. 짧은 순간에 이상 징후를 포착해야 하다 보니 각종 물품의 크기·모양 등에 대한 인지를 기본으로 극도의 집중력도 함께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 사이 간단한 대화는 물론 어떠한 소리도 용납되지 않았다.
엑스레이 판독을 비롯해 정보분석·통관 심사 등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된 특송 상자는 화물 검사장으로 이동했다. 선행 조사에서 수상한 점이 포착된 특송 물품만 ‘콕’ 짚어 하는 이른바 ‘타기팅’ 검사였다. 직원들은 특송 상자는 물론 봉투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만지고 뜯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특히 의심이 가는 물품은 이온스캐너, 라만 분광기로 정밀 조사했다. 혹여 마약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까지 끝까지 파고드는 것이다. 이온스캐너는 인체·사물에 묻어 있는 입자를 분석해 특정 유무를 판독하는 장치다. 라만 분광기는 마약류가 함유된 것으로 의심되는 물질을 분석해 마약류를 색출한다. 기존에 사용하는 이온스캐너보다 분석할 수 있는 물질의 범위가 넓다.
조주성 인천공항본부세관 특송우편총괄과 정보분석팀장은 “통상 특송 물품으로 유입될 수 있는 물품 가운데 마약인지 아닌지 육안으로 구별하기 쉽지 않은 게 많다”며 “액상대마와 오일, 설탕과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이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이상 징후 발견 시 촉각·시각·후각 등을 통한 직접 조사는 물론 과학기술을 통한 분석까지 한 치의 의심도 남게 하지 않는 것이다.
국제우편물류센터에서 만난 마약 탐지견 ‘아스틴(8세·래브라도리트리버종)’도 감독망의 한 축을 담당한다. 아스틴은 컨베이어벨트로 의심 우편 화물이 들어오자 연신 코를 ‘킁킁’ 거렸다. 1분에 수십 개 우편 화물이 줄을 이었지만 하나도 놓치지 않는 ‘베테랑’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이동 중에 갑자기 없어진 아스틴을 찾아보니 한 우편물에서 마약을 찾아내 알리고 있었다’는 양재우 인천공항본부세관 마약조사1과 주무관(담당 핸들러)의 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통상 마약 탐지견의 은퇴 시기는 10세가량이다. 앞선 사례와 같이 그동안 쌓은 마약 탐지에서 경험으로 봤을 때 아스틴은 마약 탐지견 가운데서도 ‘최고 숙련견’에 속했다.
양 주문관은 “마약을 발견하면 (아스틴이) 가만히 멈춰 앉는 등 신호를 보낸다”며 “마약 탐지견에게 있어 마약을 찾는 업무가 놀이의 일종이라고 해도 후각이 무뎌질 수 있고 체력을 고려해 20~30분에 한 번 교대한다”고 말했다. 아스틴은 현재 총 다섯 마리의 마약 탐지견과 함께 일한다. 후각 등 특성에 따라 래브라도리트리버·스프링어스패니얼종을 쓴다는 게 양 주무관의 설명이다.
마약을 직접 숨기고 입국하는 등 하늘길을 통한 직접 밀수도 인천공항본부세관이 예의 주시하는 부분이다. 관세청은 밀리미터파 전신 검색기를 현 3대에서 16대로 늘려 인천공항본부세관을 비롯한 전국 공항·항만에 설치할 계획이다. 밀리미터파 전신 검색기는 파장의 길이가 짧은 파동을 활용해 이상 물질을 지니고 있는지를 탐지하는 장비다. 검색에 소요되는 시간은 단 3초. 입국자의 체형을 분석해 이상 징후가 없는지 포착한다. 출입국 정보 등을 중심으로 한 정보분석·통관 심사를 비롯해 엑스레이 판독, 2차 타기팅 검사, 마약탐지견, 밀리미터파 전신 검색기까지 하늘길을 통해 국내에 발을 디디는 승객·화물·우편 등까지 5중 감시망을 작동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시각·촉각·후각은 물론 정보기술(IT) 발달에 따른 첨단 장비까지 동원해 촘촘한 감시망이 24시간 가동되고 있으나 여전히 하늘길을 통한 마약 밀수는 줄지 않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단속에서 적발된 마약류는 769㎏으로 2022년(624㎏)과 비교해 100㎏ 이상 늘었다. 올 들어 3개월 동안만 142㎏의 마약이 적발됐다. 지난해 밀수된 마약 가운데 1위는 단연 메스암페타민으로 437㎏에 달했다. 이는 2022년(437㎏)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필로폰을 제외한 향정신성의약품 등 신종 마약도 171㎏을 기록했다. 신종 마약의 경우 2020년에는 21㎏에 불과했으나 2021년에는 142㎏으로 7배 늘었다. 2022년 266㎏으로 급증했다가 지난해에는 171㎏으로 줄기는 했으나 여전히 100㎏대를 기록했다. 마약이 주로 유입되는 경로는 국제우편으로 지난해에만 327㎏이 유입됐다. 이는 2019년(33㎏)과 비교해 10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특송 화물의 경우도 2019년에는 28㎏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274㎏을 기록해 6년 연속 느는 등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항공 여행자를 통해 국내로 들어온 마약도 148㎏에 달했다. 여행객으로 위장해 몰래 유입되는 마약은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2020년(55㎏)과 2021년(12㎏), 2022년(36㎏)에는 단 두 자릿수에 머물렀다. 하지만 해외여행이 재개되면서 지난해 세 자릿수를 기록하는 등 다시 2019년(181㎏) 수준에 근접했다.
게다가 마약 밀수범들이 쓰는 수법도 한층 교묘해지고 있다. 구두굽에 숨기는 고전 수법부터 신종 방식까지 감독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한 ‘꼼수’도 다양하다. 이들은 복대에 소량으로 나눠 숨기는가 하면 감기약인 듯 숨겨 반입하기도 한다. 캡슐형 약 안에 마약을 담고 뜯지 않은 듯 재포장하는 방식이다. 일부는 건강기능식품으로 속여 반입을 시도한다. 또 통상 지니는 물품처럼 보이면 의심을 받지 않다는 생각에 말 그대로 ‘대놓고’ 들여오는 대담함도 보이기도 한다. ‘환’ 모양의 대마를 약으로 꾸며 플라스틱 통에 담아 주머니에 넣고 입국하는 수법이다.
김두현 인천공항본부세관 여행자통관1과장은 “마약을 밀수하는 이들은 국적도 다양하다”며 “돈의 유혹에 빠진 초보들도 많은 데다 나이대도 20~70대까지 넓게 분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감독 당국의 단속 방식 자체를 스스로 학습하는 듯 수법이 변화하고 있다”며 “단속에 포착될 시에는 대부분이 ‘누가 부탁했다’거나 ‘내용물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식의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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