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금속 무역업체를 운영하던 한 45세 중국인은 3월 일본 도쿄로 이주했다. 그는 ‘하야시 토모’로 이름을 바꾸고 가족들도 일본에 데려왔다. 하야시씨는 현재 65만 달러(약 9억 원)에 달하는 고급 해안 콘도에 둥지를 틀고 두 아들을 일본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다.
하야시씨처럼 일본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중국 거부(巨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현지 시간) 중국 정부의 독재 시스템과 경기 둔화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엑소더스(대탈출)’에 나서면서 일본 호화 부동산 시장이 그 수혜를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 고향을 떠나려는 중국인들에게 여러 면에서 좋은 선택지다. 비행기로 불과 몇 시간 만에 도착 가능한 이웃 국가인 데다 한자를 쓰는 만큼 상대적으로 적응이 쉽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부동산 등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인 수는 지난해 말 기준 약 82만 2000명으로 전년 대비 6만 명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투자이민 컨설팅업체 헨리앤파트너스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중국의 고액 자산가 1만 3500명이 같은 해 해외 이주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수준이다. 중국에서 태어나 귀화해 도쿄에서 부동산 중개를 하고 있는 오리하라 오사무씨는 중국 구매자들이 늘어난 영향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수익이 3~4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그는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장기 비자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WSJ는 하야시씨가 살고 있는 48층 건물 내 주택 소유자의 3분의 1이 중국 이름을 가진 개인이나 법인이라고 전했다. 또한 도쿄만 부근의 고층 빌딩에 사는 주민 4분의 1 이상이 중국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도쿄 중심부의 신축 아파트 평균 가격은 지난해 40% 상승해 74만 달러 수준에 달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일본 리조트 구매 열기도 뜨거워지면서 훗카이도의 휴양지들도 들썩이고 있다. 훗카이도 북부 스키장 부근의 후라노라 마을은 지난해 주거용 토지 가격이 28% 상승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가파른 상승세다.
일본으로 이주하려는 중국인은 △일본으로 자금을 내보내는 것 △비자를 받는 것 등 크게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한다. 중국 정부는 자국민이 해외로 반출할 수 있는 자금 규모를 제한하고 있지만 많은 부유한 중국인들은 국제 사업을 벌이는 회사를 소유하거나 해외 투자를 벌이고 있다. 오리하라씨는 “고객들은 보통 홍콩이나 싱가포르 은행 계좌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일본에) 송금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비자의 경우 2명 이상의 직원을 두고 영주 사업소가 있는 일본 사업체에 3만 2000달러 이상을 투자하면 ‘경영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다. 또한 일부는 고급 학위를 이용해 ‘전문가 비자’를 신청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WSJ는 “다른 나라로 이주를 꿈꾸는 중국인들에게 일본이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다”라며 “미국과 캐나다, 싱가포르 역시 이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홍콩인들은 종종 영국으로 향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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