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약 단체들이 내년 요양급여비용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정할지를 두고 벌이는 수가(酬價·의료서비스 가격) 협상이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수가는 의약 단체들이 제공했던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해 건보 당국이 지급하는 대가를 말한다. 건보공단은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건강보험료를 의료 공급자에게 제공하는 수가의 재원으로 삼기 때문에, 수가 협상 결과는 내년 건보료 수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에 올해 동결됐던 건강보험료율이 내년에는 오를지, 오른다면 얼마나 인상될지 관심이 쏠린다.
건보공단은 의약단체들과 수가 협상을 본격 시작하기 앞서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오찬 간담회 형태로 상견례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성규 대한병원협회장, 마경화 대한치과의사협회부회장,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 최광훈 대한약사회장, 이순옥 대한조산협회장 등 5개 의약단체장이 참석했다. 정부와 의대 정원 증원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소통과 배려로 국민과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5140만 가입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매진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양질의 의료를 적기에 공급하고 보험재정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필수의료 위기, 의료전달체계 왜곡 등을 초래한 불합리·불균형한 보상구조를 정상화하는 노력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든든한 건보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이달 셋째 주부터 의약 단체들과 본격적으로 의료·요양 서비스 비용을 얼마나 지급할지 수가 협상을 진행한다. 간담회에 불참했던 의협 측 관계자는 “매년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않는 1.6% 정도로 수가를 올리고 있어서 진정성 있는 협상을 원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만 전달했다”고 말했다. 협상이 타결되면 국민건강보험법 제45조에 따라 이달 말까지 수가계약을 맺는다. 가입자 대표로 구성된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가 협상 내용을 심의·의결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종 고시한다. 결렬되면 건강보험정책 최고 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다음달 말까지 유형별 수가를 정한다. 건보공단은 올해 수가를 전년대비 기준 각각 동네 의원 1.6%, 병원 1.9%, 치과 3.2%, 한의 3.6%, 약국 1.7%, 조산원 4.5%, 보건기관(보건소) 2.7% 올려줬다. 평균 인상률은 1.98%였다.
협상 결과에 따라 내년 수가가 오르면 건강보험료율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 올해 건보료율의 경우 지난해와 같은 7.09%로 2017년 이후 7년만에 처음이자 동결된 바 있다. 건보료율 동결이 역대 3번째라는 점에서 이례적 결정이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건보 재정이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인 데다가, 물가와 금리 인상 등으로 어려운 국민경제 여건을 고려해 동결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건보료율은 복지부가 최근 공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년)’을 통해 5년간 건보 재정을 추산한 것에 비춰, 상승할 경우 2% 안팎에 그치리란 전망이 나온다. 이 추계는 올해 7.09%인 건보료율이 2025년부터 1.49%씩 인상되고, 수가(의료서비스 가격)는 올해부터 1.98%씩 오르며, 2025년부터 보험료 수입의 14.4%가 정부지원금으로 들어온다는 가정 아래 진행했다. 건보당국이 앞으로 해마다 건보료율은 1.49%씩, 수가는 1.98%씩 올리는 쪽으로 잠정적으로 검토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 결과 2025년 보험료와 국고지원 등으로 들어온 건강보험 총수입은 104조5611억원으로 사상 처음 100조원을 넘는 동시에 진료비 등으로 나갈 총지출 역시 104조978억원으로 100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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