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나이가 든다고 해서 성숙한 음악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늘 음악에 대해 겸손하게 연구하고 꾸준히 레퍼토리를 확장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데뷔 23년차를 맞은 40대 연주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두고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멋지게 나이 드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 같이 밝혔다.
임동혁은 2001년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연주할 때 거침 없는 기세와 동시에 디테일까지 섬세한 연주로 전 세계 클래식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등 각종 콩쿠르를 석권하며 국내 클래식 위상을 높였다. 오는 29일 서울경제신문이 주최하는 음악회 ‘차이콥스키 vs 드보르작’에서 협연을 맡아 그의 강렬한 타건으로 각인된 곡인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 1번 내림 나단조를 선보인다. 20여 년의 간극을 두고 성숙함이 더해진 그의 연주에 대해 관객들이 거는 기대가 크다.
임동혁은 이 곡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은 러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작곡가인 차이콥스키가 미국 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게 된 첫 곡”이라며 “곡 전체의 서사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각 악장별로 러시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그가 모스크바음악원 교수가 된 지 9년 째인 1874년에 쓰여졌다. 초연은 1875년 미국 보스턴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에 의해 이뤄졌다. 차이콥스키는 평소 그가 존경하던 모스크바음악원 원장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에게 헌정하고 직접 초연을 부탁했지만 루빈스타인은 비판적인 평가를 하며 곡을 일부 손 볼 것을 요청했다. 곡이 피아노 악기 특성에 맞지않고 독창성도 부족하다는 혹평이었다.
이에 실망한 차이콥스키는 독일의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한스 폰 뷜로에게 초연을 부탁했다. 이 곡의 진가를 알아본 뷜로는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연주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임동혁은 “수 많은 콩쿠르에 참여하던, 열정적이고 치열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라며 “이번 연주에서는 그때의 감정과 더불어 차이콥스키가 표현하고자 했던 러시아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데 최대한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악장에서 연주되는 카덴차가 인상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이날 연주회에는 마에스트라 여자경이 지휘를 맡고 트리니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오른다.
그는 국내에서는 글로벌한 인지도를 누린 1세대 아이돌 피아니스트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클래식 입지가 낮았던 상황이라 국제 무대에서는 고충도 있었다. 그는 “초창기만 해도 자국에 유리하게 심사하던 분위기 때문에 어려웠지만 지나고 나니 저를 성장시킨 경험이었다”고 술회했다.
2003년에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3위로 입상했지만 심사의 불공정성에 문제 제기를 하며 수상 거부를 하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도 클래식 음악에 대한 높은 열망과 노력이 있다는 걸 남들보다 조금 더 먼저 알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감사하다”며 조성진, 임윤찬 등 후배 피아니스트의 활약을 언급했다, 그는 “충분히 세계 무대에서 주목 받을 수 있는 실력 있는 친구들이라는 생각에 흐뭇하다”며 “후배들이 좋은 성과를 낼 때마다 좋은 선배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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