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범죄는 피해자와 주변 사람들을 단절·고립시키려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심리를 교묘히 파고드는 지능 범죄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고립시키려 한다면 먼저 의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피싱 범죄가 급증하면서 경찰에서도 올해 다양한 유형의 피싱 범죄 수사를 일원화하기 위해 ‘피싱 범죄 수사 전담팀’을 신설했다. 특히 현금수거책을 통해 직접 피해금을 탈취하는 ‘대면편취형’ 범죄가 늘어나면서 현장 기동력에 특화된 형사과가 수사를 담당하게 됐다. 7년간 피싱 범죄를 추적한 책임수사관 김준형(44) 서울 도봉경찰서 피싱범죄수사팀 팀장도 일선에서 관련 수사를 이어온 베테랑 중 한 명이다. 그는 최근 도봉경찰서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각종 시나리오가 생기고 악성 해킹 기술이 도입되는 등 피싱 수법도 나날이 치밀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2018년부터 피싱 범죄를 수사해온 김 팀장은 “수사를 하다 보니 피싱 범죄는 애초에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필리핀 등 해외에 있는 ‘상선(上線·우두머리)’ 조직을 추적하는 게 어려운 데다 수천만 원의 피해금은 대포통장을 통해 순식간에 사라지기 일쑤다. 김 팀장이 2018년부터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 등에 ‘김준형 형사’ ‘도봉경찰서 피싱 범죄수사팀’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꾸준히 국민들에게 최신 범죄 수법과 예방법을 공유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김 팀장은 “미끼 문자를 받은 후 제 글이 생각나서 연락을 직접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고 전했다.
2006년 국세청 직원을 사칭하며 처음 발생한 피싱 범죄는 현재 보이스피싱과 메신저피싱(메신저를 이용해 지인·가족을 사칭하는 피싱), ‘몸캠’ 피싱으로 분화돼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기술 발전으로 피싱 범죄도 치밀해졌다. 김 팀장은 “예전에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무작위로 공격을 시도하는 피싱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탈취한 개인정보를 갖고 피해자에게 맞는 시나리오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금융권에서는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에 맞서 피싱 조직은 은행에서 현금 인출 시 시나리오를 만들어 피해자에게 사전 교육시키는 등 진화하고 있다. “수사 대상이니 호텔로 들어가서 누구와도 만나지 말라”고 협박·감금해 타인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경우도 있다.
피싱 범죄 조직이 파고드는 것은 피해자의 취약한 심리다. 최근 가장 흔한 범죄 유형인 ‘대환대출 피싱’의 경우 경기 악화와 고금리에 이자 비용을 아끼려는 중장년층을 노린다. ‘가족 사칭 피싱’은 자녀와 소원해진 부모를, ‘검사·경찰 피싱’은 취업준비생 등 취업이 중요한 청년층을 타깃으로 한다.
고액 알바라는 말에 속아 자신도 모르게 현금수거책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주의를 당부했다. 피싱 조직은 구인 구직 사이트와 텔레그램 등을 통해 비대면 채용을 진행한 뒤 고액 알바, 채권추심 업무라며 건당 20만~30만 원의 보수를 주고 현금수거책을 끌어들인다. 이들은 또 다른 피해자인 셈이지만 공범으로 입건되는 것이 원칙이다. 김 팀장은 “고액 아르바이트와 비대면 채용의 경우 의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피싱 범죄 수사의 어려움으로 “대포폰·통장을 쓰다 보니 조직·자금 추적이 어렵고 점조직이어서 일망타진이 쉽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일선 경찰서는 현금책 등 하급 조직원을 붙잡으면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경찰청은 쌓인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상선 조직원을 검거하는 식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도봉경찰서의 경우 정한규 서장의 주도로 ‘보이스피싱 제로화 프로젝트’를 추진해 태스크포스(TF) 팀을 운영하면서 예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김 팀장은 “교수나 변호사도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며 “더 낮은 금리로 대출해준다는 문자나 금전을 요구하는 수사기관의 전화, 휴대폰이 고장 났다는 자녀의 문자 등을 보면 의심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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