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1000만 노인 시대’를 대비해 정년 연장·폐지를 공식 제안하면서 이를 위해 기업에 ‘계속고용장려금(정년 이후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한 사업주를 지원하는 제도)’을 확대 지급하자고 정부에 요청했다. 연금 개혁 논의와 맞물려 60세 이상 고령층의 고용 연장에 대한 필요성을 지적한 것인데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이 같은 방안이 보고돼 정부가 정년 연장·폐지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조만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통합위 산하 ‘노년의 역할이 살아 있는 사회’ 특별위원회는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노인 관련 패키지 정책을 제시했다. 특위는 ‘노년의 역할과 세대 간 존중이 살아있는 사회 구현’이라는 정책 목표를 세우고 4개 분야에서 총 8개 정책을 제안했다. 통합위는 앞서 1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성과 보고회에서 이들 제안의 보고를 마쳤다고 전했다.
특위는 우선 ‘주된 일자리’에서 계속고용을 중점 추진해 초고령 사회에 대비하자고 제안했다. 주된 일자리란 가장 오래 종사한 일자리를 말한다. 단기적으로는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을 확대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년 연장 또는 폐지, 재고용 등을 통해 계속고용을 도입·확산할 수 있게 돕자고 촉구했다. 중장기적으로 노동시장 여건이 성숙될 경우 직무 중심 임금 체계로 개편을 추진해 계속고용 제도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통합위 관계자는 “(계속고용을 통해) 노년 빈곤을 예방하고 오랜 기간 축적한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위가 계속고용 문제를 화두로 던진 것은 노년 일자리의 안정성을 골자로 한 노동 개혁을 단행하지 않고는 초고령 사회에 대비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약 622만 명으로 사상 처음 6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취업자(15세 이상) 중 60세 이상 비중도 21.8%에 달한다.
고령층의 상당수가 퇴직 이후에도 연금을 비롯한 소득이 부족해 생계비를 마련하려 일터로 내몰리는 상황인 셈이다. 특히 최근 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수령 개시 시점을 늦추는 방안도 언급되면서 정년 연장 등 고령자의 계속고용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일자리 문제를 외면한 채 연금 개혁만 이뤄질 경우 노인들은 수년간 수입이 없는 ‘소득 절벽’으로 내몰릴 수 있다.
다만 재계는 신중한 모습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9일 발표한 ‘대기업의 중고령 인력 운영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 255곳 중 60세 이상 인력을 1명 이상(임원 직급 제외) 고용한 기업은 29.4%에 불과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는 아직 고령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토대가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인 정순둘 특위 위원장은 이런 산업계의 부담에 대해 “고령층들이 원하는 고용의 형태는 풀타임이 아닌 경우가 많다”며 “급여를 보다 유연하게 가져가는 형태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위는 의료·보건, 공존, 사회 참여 확대 등의 분야에서도 제언을 내놓았다. 소아청소년과처럼 고령 환자를 통합적으로 진료하는 ‘노년기 맞춤형 진료 모델’ 도입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현행 의료 체계는 개별 질환, 전문과 중심으로 분절돼 여러 질환을 가진 노인들은 다양한 진료과를 돌아다녀야 해 불편함이 크다는 문제점을 감안했다. 상급종합병원·공공병원에 노년 환자 관리실을 운영하고 의원급 의료기관에는 노년기 포괄 진료를 위한 적정 수가를 도입하자는 권고도 내놓았다.
아울러 노년을 약자로 바라보는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을 추진하는 한편 노인 관련 법령의 종합적 체계와 기틀을 담는 ‘노인 기본법’ 제정도 검토하자고 강조했다. 고령 친화 대학 모형을 지자체와 대학에 제시해 노년층의 대학 교육 기회를 확대하자고 제안도 나왔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은 “100세 시대를 가정할 때 은퇴 이후 30여 년의 긴 노년을 사회적 역할 없이 살 수 없다”며 “이번 정책 제안이 나이가 장벽이 되지 않는 사회를 구현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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