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하고 이후 국내 KBO리그를 호령했던 투수 김선우. 첫째를 올해 대학에 보낸 아들 둘의 이 47세 ‘기러기 아빠’는 부쩍 늘어난 젊은 팬의 응원이 신기하기만 하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MLB 정규 시즌 경기 중계에서 ‘매의 눈’으로 정보를 전달해 화제가 된 김선우는 종합 편성 채널의 야구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서도 탁월한 분석과 친절한 피드백으로 젊은 시청자들을 TV와 휴대폰 앞으로 끌어들였다.
김선우는 ‘롤잘알’이기도 하다. 세계적 인기의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롤)의 유저로 롤 경기 ‘직관’도 한다. 어릴 적 게임에 빠진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롤을 다운로드하다가 스스로 실력자가 됐다.
최근 만난 김선우는 “나는 이름만 들으면 아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출연해 해설하고 공도 던지면서 MLB 출신이라든가 이력이 많이 부각되면서 새로운 팬이 정말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오늘 여기(서울경제신문 본사)에 오다가 옆 건물로 잘못 들어갔는데 어떤 분이 ‘최강야구 김선우 씨가 여기 웬일이세요’라며 인사해주시더라고요. 이렇게 알아봐주시는 상황들이 굉장히 자주 일어나요. 최강야구가 받는 사랑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올 3월 열렸던 MLB 월드 투어 서울 시리즈 얘기를 아직도 한다. 현장 해설을 했던 김선우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김선우는 “무키 베츠의 2024 시즌 MLB 1호 홈런, 김하성의 타석 때마다 나오던 기립 박수 등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MLB 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자체에 굉장한 뿌듯함이 있다”며 “(박)찬호 형이 길을 연 뒤 저, (김)병현이, (서)재응이, (최)희섭이 등이 도전을 하고 미국으로 갔지만 MLB를 한국으로 불러들여 경기를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던 일이다. 그런 경기를 제 입을 통해 한국 팬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서 더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고 밝혔다.
경기 외적으로도 화제가 많이 된 시리즈였다. 김선우는 “최고 수준의 잔디 등 경기장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의 노력이 들어갔다. MLB에서 원하는 기술들과 구장 상태를 굉장히 빠른 속도로 완벽하게 구현해 선수들의 플레이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선수들과 선수 아내들이 곳곳을 다니면서 한국을 홍보하는 역할도 했다. K푸드, 응원 문화도 화제가 되지 않았나. 저도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 경기가 열리는 도시의 명소를 구경하고 유명 음식을 먹어보고 그랬는데 그런 걸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한국에서 똑같이 한 것”이라고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2027년 또는 2028년에 다시 한번 유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던데 잘 치러냈기에 다음번은 또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기대도 된다”고 했다.
김선우는 MLB와 KBO를 합쳐 해설 경력이 10년이다. MBC스포츠플러스에서 야구 팬들을 만났고 이번에 쿠팡플레이를 통해 중계된 역사적인 경기에 메인 해설자로 부름을 받았다. 봄 경기인데 김선우의 준비는 지난겨울부터 시작됐다. “MLB 해설을 3~4년 만에 다시 하려니 무엇보다 최근의 흐름을 파악해야 했어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두 팀의 주축 선수 데이터부터 뽑았죠. 최근 구위 등 기술적인 부분은 어땠고 또 어떤 스토리들이 있었는지 빠짐없이 자료를 모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주요 선수를 정리하는 데만 한 달이 걸리더라고요.”
김선우에게는 3~4년 전까지 MLB 해설을 할 때 작성해둔 30개 파일이 있었다. 구단별로 정리해놓은 그 파일들을 다시 펴서 현재의 엔트리와 비교하며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일을 업데이트하는 식으로 준비했다. 손으로 써야만 머리에 남는 스타일이어서 컴퓨터 작업 대신 다 수기로 했다고 한다. 김선우는 “예를 들어 베츠의 자료는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의 것이어서 예전 데이터와 최근 데이터를 비교하면서 변화한 계기를 분석했다. 선수 한 명을 정리하는 데 하루가 소요됐다”고 말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김선우는 “물론 중계할 때 정리해놓은 걸 다 얘기할 수는 없다. 일부도 전달하기 힘들다. ‘예전에는 이런 쪽으로 아쉬움이 있던 선수였는데 1~2년 사이 보완해 이렇게 됐다’는 식의 설명을 전달하는 정도면 그래도 많이 얘기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1을 얘기할지라도 준비는 100이 돼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어떤 선수에게서 특정 행동이 나오면 그 상황에서 바로 시청자에게 피드백을 해줄 수 있다”고 전했다. 힘들게 정리한 파일을 공개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저만의 기록물로 남기고 싶어요. 이번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일은 한국에서 처음 열린 MLB 정규 경기라는 상징성을 살리려 액자를 짜서 특별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 중 일어난 돌발 상황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샌디에이고 1루수 제이크 크로넌워스의 글러브에 구멍이 생겨 그곳으로 공이 빠져나간 것이다. 김선우는 이를 즉각 포착해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야구 팬들은 그렇게 공이 통과했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바로 알아차린 김선우를 더 신기해 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타구가 그냥 글러브를 스치고 지나간 것으로 봤을 거다. 김선우는 “땅볼이 그렇게 글러브 포켓을 통과하는 것은 그전까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중계를 제법 오래했고 중요한 경기도 많이 하다 보니 개별 장면에 대한 집중력이 길러졌다”고 설명했다. “해설 초기에는 중요한 그림을 놓치거나 그림에 신경 써 말을 놓치거나 그랬어요. 그러다 10년이라는 시간과 경험이 쌓이다 보니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을 꽤 정확히 보는 눈과 확신이 생긴 듯합니다.”
꼭 서울 시리즈가 아니어도 김선우는 ‘작두 탄 해설’이라는 얘기를 늘 들어왔다. 볼 배합과 구종에 대한 예상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김선우는 자세를 낮췄다. “사실 해설하는 분들은 웬만하면 다 아시는 거예요. 다만 상황에 맞춰서 좀 더 빠르게 전달하는 것뿐이죠. ‘작두 탔다’는 말은 과찬입니다. 저는 그저 현 상황을 보고 흐름을 말하는 사람이에요. ‘이렇게 갈 거다’ 먼저 던져드리고 팬들이 쉽게 보시게끔 하는 식이죠.” 그는 “야구를 보는 흐름을 조금 더 빠르게 얘기해드리고자 하는 거다. 그러면 다음 상황을 기다리며 긴장이 되고 속이 더 터질 수도 있고 더 불안해지거나, 반대로 희망을 갖게 되거나 더 즐거워진다. 팬들 입장에서 똑같은 관점으로 설명을 드리려 노력한다”면서 “구종을 맞히려고 하는 해설은 아니다. 공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전달하려 한다. 야구 팬들과 교감하고 노력하면서 단점은 고쳐나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해설할 때의 불문율도 있다. “투수도, 타자도 폼에 대해서는 절대 안 건드린다”는 것이다. 김선우는 “그건 팀에 계신 분들이 하는 일이다. 저는 ‘제구가 안 되고 있는데 릴리스 때 팔 높이가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도를 얘기할 뿐이다. ‘이 타자가 지금 이런 타격을 하고 있는데 그건 투수의 투구가 이렇기 때문이다’ 정도도 물론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그를 프로팀 감독으로 보고 싶다는 팬들도 있다. 김선우는 다시 한번 자세를 낮췄다. “제 본분은 야구 해설이에요. 공부할 게 아직 많아요. 프로팀 감독이라…. 단기간에 쫓기듯이 뭔가를 이루기는 무척 힘든 곳이 프로의 세계라고 생각하거든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고 내 야구 철학이 이해되는 환경이라면 언젠가 가능한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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