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가 실패하면 전쟁이 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민들이 외교를 보는 시각은 심각하지 않습니다.”(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국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건 외교관입니다. 안보 이야기가 나오면 국방부 장관만 거론되곤 하는데 외교부 장관의 역할도 있습니다."(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강대국들이 결국 자국 중심으로 가는 게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외교 상수처럼 돼버려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것 같습니다.”(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
“과거에 비해 협상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통합 억제의 시대가 왔습니다.”(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올해로 19회를 맞은 ‘제주포럼’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협력’을 주제로 지난 29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막했다. 제주특별자치도·국제평화제단·동아시아재단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유엔 정부평화구축국(UN DPPA), 미 평화연구소(USIP) 등 국내외 30여개 기관, 300여명의 글로벌 리더와 전문가 등이 모였다. 30일 열린 ‘전직 외교장관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송민순(34대)·유명환(35대)·김성환(36대)·윤병세(37대) 등 역대 외교부 장관 4명이 현재의 한국 외교에 조언을 쏟아냈다.
세션 좌장을 맡은 손지애 외교부 문화협력대사는 “오늘은 정말 역사적인 자리”라며 “한국의 전직 외교부 장관 4분을 모시는 건 처음”이라며 대담을 시작했다. 손 대사는 “오늘 모인 장관들의 공통점은 모두 직업 외교관이라는 것. 이 분들의 시각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중추국가 역할을 어떻게 잘 해나갈지 지혜를 취합해 보려한다”고 말했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지금의 전세계 외교를 “Fire everywhere. 온 사방에 불이 붙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윤 전 장관은 “탈냉전 시대는 종언했으나,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지 못한 전환기적 상황”이라며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나갈지 확신하는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가기 전 주변 만류를 물리치고 일본을 먼저 가서 관계 개선을 했다”며 “이 결정은 제가 볼 때 지정학적 면에서 상당히 전략적 결단”이라며 현 정부의 외교를 치켜세웠다. 그는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처한 위치를 봤을 때 미일중러 4개국과 동일하게 관계를 갖기는 쉽지 않다"며 "소위 가운데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 우리에겐 그럴 힘이 없습니다"고 했다. “확실하게 우리가 서 있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에서 스스로 움직이면 손해되는 위치인데 그런 역할이 되겠냐”는 것이다.
김성환 전 장관은 “북한의 핵실험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에 대한 핵우산을 강화하는 것으로 갈 수 밖에 없다”며 “한미 대응을 통해 우리의 대응력을 강화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조태열 장관이 지난 13일 외교장관으로는 6년 반 만에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것을 두고는 “우리가 중국과 소통을 많이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고 평했다.
송민순 전 장관은 “세계 질서 이야기할 때 규칙기반 질서(rules based order)를 자주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힘에 기반한 질서(power based order)는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면서 “미중 관계나 현재의 세계 질서를 생각하면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북한이 의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선이 더욱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며 "북한의 경우 위성 발사에 무조건 하려고 할 것이며, 이러한 전제 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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