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코다당증은 소아청소년과 의사에게도 생소한 질환입니다. 환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제공하려면 끊임 없이 공부하고 질환을 알리는 데 힘써야 합니다. 해외 의료진들과의 소통도 게을리 해서는 안되죠.”
조성윤(사진) 삼성서울병원 뮤코다당증센터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대표적인 기피과인 소청과에서 희귀병 환자들을 진료하는 일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쉽지 않지만 설렘이 더 크다”고 답했다. 남들과 조금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가졌지만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는 것이다. 조 교수가 하루라도 더 빨리, 한 명의 뮤코다당증 환자라도 더 찾아내려 애쓰는 이유기도 하다.
◇ 유전적 원인으로 효소 결핍…체내 독소 쌓이는 희귀병
뮤코다당증은 글리코사미노글리칸(GAG·Glycosaminoglycans) 분해에 필요한 라이소좀 효소 부족으로 발생하는 유전질환이다. 효소가 아예 없거나 부족하다 보니 GAG가 분해되지 않고 체내 세포의 라이소좀 내에 쌓이는데 뇌·심장·간 등 여러 장기에 축적되면서 점차 육체적, 정신적 퇴행이 진행된다. 심한 경우 어린 나이에 사망할 수도 있다. 어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어떤 효소가 결핍되는 지에 따라 크게 7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체내 축적되는 GAG와 유전 양식, 임상 양상은 제 각각이다. 성장 과정에서는 골격계 이상, 얼굴 모양의 변화, 관절 구축, 간 비대 같은 증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GAG가 신체 어느 부위에 얼마나 축적되는 지에 따라 인지 장애, 퇴행, 각막의 혼탁, 청력 장애 등이 동반되기도 하고 회음부 탈장, 호흡기 감염이 빈번해진다. 그 밖에 수종, 경추 신경의 압박, 심장 판막의 협착 혹은 역류, 호흡 장애, 수면 무호흡증이 동반될 수도 있다.
◇ 원인 찾지 못한 채 수년간 ‘진단 방랑’…아이도 부모도 속앓이
문제는 대부분의 환자가 출생 당시에는 정상이기 때문에 조기 진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언제부터인가 아이의 키가 자라질 않고 얼굴 모양이 투박하게 변하다가 서혜부와 배꼽 탈장, 중이염, 고막 천공 등 각종 문제가 생기는데 원인을 찾지 못해 수년간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다가 뒤늦게 진단 받는 경우가 많다. 조 교수가 진료실에 마주 앉은 뮤코다당증 환아의 부모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안갯속을 걷는 느낌’이란 표현이었다고 한다. 그는 “전국에 모든 뮤코다당증 환자를 합쳐도 200명 남짓일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확한 병명을 찾기까지 환자 가족들의 여정이 얼마나 길고 외로웠을까 생각하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했다.
국내에서 가장 흔한 뮤코다당증은 2형인 헌터증후군이다. ‘이두로네이트-2-설파타제’라는 효소의 결핍으로 발생하는데 출생 시 몽고반점이 전신의 매우 많은 부위에 퍼져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 2세 무렵이 되어서야 낮은 콧등에 코가 넓어지고 이마가 튀어나오거나 머리가 유독 커보이는 등 헌터증후군의 특징적인 얼굴 외형을 보인다.
◇ 헌터증후군, 효소대체요법으로 치료 가능한데…진단 놓치기도
헌터증후군은 1형인 헐러증후군, 4A형인 모르퀴오증후군, 6형인 마로토-라미증후군과 함께 효소대체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한 유형이다. 환자의 몸에 거의 없거나 부족한 효소 단백질을 정맥으로 투여함으로써 세포 내 GAG 축적을 줄이고 증상을 완화한다. 과거에는 환자에게 나타난 증상을 완화시키는 대증적 치료만 이뤄진데 반해 10여년 전 효소대체요법이 등장하면서 뮤코다당증의 조기 진단은 더욱 중요해졌다.
조교수는 “효소대체요법이 확립된 유형의 경우 질병이 진행되기 전에 치료를 받으면 합병증 발생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명도 연장할 수 있다”며 “뮤코다당증을 포함해 몇 가지 질환에 대해서는 당일 진료도 전부 수용한다”고 말했다. 하루라도 빨리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하는 게 환자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뮤코다당증) 의심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으면 예정된 진료시간이 지나도 그냥 넘기질 못한다는 얘기다.
◇ 신생아 선별검사로 조기진단 기회 늘어…“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이 기다려”
최근에는 신생아선별검사를 통해 조기 진단되는 비율도 부쩍 높아졌다. 신생아선별검사는 정상 신생아를 대상으로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희귀하지만 조기 진단 시에 더 좋은 경과를 보일 수 있는 질환에 대해 선별적으로 시행하는 검사다. 2018년부터 뮤코다당증 진단 검사가 급여화되며 환자 부담이 종전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도 긍정적 변화로 꼽힌다.
삼성서울병원은 2016년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도움으로 국내 유일의 뮤코다당증센터를 구축했다. 뮤코다당증 의심 환자의 유전자 분석 진단검사 비용과 비급여 의료비 지원, 주사 치료실 운영 등을 통해 경제적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던 환자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지난 8년간 삼성서울병원 뮤코다당증센터를 통해 지원 받은 환자는 5727명에 달한다.
조 교수는 “효소치료를 받기 위해 매주 혹은 3개월마다 센터를 찾는 환자들이 3~5시간씩 머무는 공간이 편안하고 덜 지루하게 여겨지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뮤코다당증은 아직 완치의 개념이 없지만 정기적인 치료를 통해 여러 증상들의 발현을 늦추고 중증도를 낮출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현재 치료제가 없는 유형에 대해서도 신약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와 가족들이 훨씬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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