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의 흥행으로 제5공화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헌법 변화를 통해 ‘공화국’을 계산하는 방식에 따라 제5공화국은 1981년 2월부터 1988년 2월까지 전두환 정권 시기다. 4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제5공화국은 아직 역사화되지 못하고 회색지대로 남아 있다. 특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그 시기는 ‘흐리고 탁한 색채’로 그려져 있고, 학술적으로는 본격적인 평가작업이 이뤄지지 못한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신간 ‘제5공화국’은 이 시기를 되돌아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기한다. 특히 정치사적으로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살펴본다. 저자인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제5공화국이 무조건 삭제해야 하는 시기는 아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민주화를 이룬 만큼 이를 제대로 이해해야 우리의 역사와 사회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책은 ‘박정희가 암살된 1979년에는 이뤄지지 않았던 민주화가 어떻게 1987년에는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1979년에는 우리 사회가 아직 민주화를 수용할 만한 충분한 준비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제5공화국을 거치면서 겪게 된 각종 사건과 충격, 그리고 사회경제적 변화를 통해 1987년 민주화를 이루게 된다”는 결론을 얻는다.
군부가 정권유지를 위해 이룬 경제성장을 통해 자라난 중산층이 결국 그 정권을 무너뜨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 됐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맛보면서 정치적 자유를 갈망하게 된 중산층의 욕구가 군부 지배를 거부했고 결국 한국의 민주화가 굳건히 자리잡게 됐다.
저자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1985년 12대 국회의원 선거’를 1987년 민주화로 이어지는 결정적 원인으로 제시한다. 우선 5·18에서 군부로부터의 거대한 희생을 겪은 뒤 대중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커졌고, 12대 총선에선 야당이 승리해 변혁 민심을 뒷받침했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1979년 유신체제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1980년 ‘서울의 봄’이 실패한 원인을 단순히 전두환의 권력욕과 군부의 힘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특히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오판과 무능, 그리고 관료 계급의 현실안주적 의식, 김종필·김영삼·김대중 등 야당의 불확실한 낙관주의에 따른 것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87년 체제’의 형성과 관련된 사실도 강조한다. 한국의 민주화는 민주화운동 세력과 제5공화국 세력 간의 합의로 이뤄졌고, 체제 전환의 과정 역시 두 세력 간의 논의를 통해 진행됐다. 이러한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이다. .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이 2020년부터 시작한 ‘한국학대형기획총서사업-20세기 한국학술총서’의 첫 작품으로 발간됐다. 3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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