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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란 없다…죽음 속에서도 새생명을 기다리는 김훈의 마음

팔순 줄 들어서기 전 김훈의

5년 만의 산문집 '허송세월(나남 펴냄)'

심혈관 질환으로 술, 담배도 끊어

생존을 위한 최저선의 '밥'에 집중

그럼에도 새생명을 기다리는 마음

/사진 제공=나남




소설가 김훈은 ‘저절로’라고 이야기 했지만 세상에 저절로라는 건 없었다.

소설가 김훈이 산문집 ‘허송세월’로 돌아왔다. 2019년 산문집 ‘연필로 쓰기’ 이후 5년 만이다.

‘허송세월’에서 김훈은 팬데믹 이후 달라진 일상을 보여준다. 산문집마다 단골로 등장했던 집 근처 일산 호수공원을 걷는 일도 일상적이지만 생활의 모습들은 무언가 달라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백내장이 낀 것처럼 모든 것들이 뿌옇게 느껴지는 날들이다. 등산을 즐기던 그는 여든 줄에 들어서기 전에 등산 장비를 후배에게 넘기고 와인을 얻어 마신다. 왜 벌써 등산을 끊느냐는 후배의 말에 그는 답한다. “끊는 게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군. 끊기 전에 저절로 물러서게 되니 좋은 일이지.”



하지만 그의 연필 끝이 향하는 감각들은 무뎌지지 않았다. 2002년 사회부 기자로 거리에서 전경과 시위대가 대치한 상태로 먹는 밥에서도 보편성을 찾아낸 김훈은 이제 주변의 사람들의 밥벌이를 면밀히 관찰한다.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음식값이 모두들 올랐다고 아우성이지만 6500원짜리 제육볶음집, 그 옆에 계란 후라이를 500원에 추가할 수 있는 5000원짜리 라면 가게는 서로가 족쇄처럼 묶여 가격 인상을 망설인다. 이 가게들을 이용하는 택배기사, 일용직 노동자들과 가게 주인 간의 팽팽한 눈치 게임은 우리 사회의 생존을 위한 어떤 최저선을 의미한다고 그는 말한다. 시장 경제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여겨지는 논리가 자유를 가져다주는 대신 양쪽을 억압하고 힘들게 하는 사슬이 된다는 것. 인류 최대의 보편성인 누구나 목구멍에 밥이 들어가야 한다는 진실은 이 대목에서 서늘해진다.

그에 따르면 현실을 지우며 서서히 다가오는 와인, 생활의 정서인 막걸리, 아귀다툼하고 희로애락하고 생로병사하는 아수라의 술 소주도 끊고 담배도 어느 순간 끊게 됐다. 3년 전부터 심혈관 계통의 병으로 치료를 받으면서부터다. 팔순을 지척에 둔 노년의 소설가에게는 ‘핸드폰의 부고가 배달상품처럼 와 있는’ 게 일상이 됐고 ‘아픈 이들은 천천히 죽고, 홍삼을 먹어가며 골프를 치는 이들은 빠르게 죽는’ 아이러니를 매순간 목도한다. 그 역시 늙어감에는 다르지 않다. 어쩐지 그뿐만 아니라 그의 오랜 독자인 우리가 더 애닳아지는 부분이다.

예민한 촉수를 지닌 이 소설가는 어떤 시간을 기다리는 듯 산문집 말미에 다시 첫 장의 호수공원으로 돌아간다. “꽃핀 나무 아래에서 온갖 냄새들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노년은 늙기가 힘들어서 허덕지덕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이 미세먼지 속에서 아기들이 태어나서 젖토한 냄새를 풍겨주기를 나는 기다린다. 이 마지막 한 문장을 쓰기 위하여 나는 너무 멀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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