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일본 야마구치현 아부초에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463가구에 나눠줘야 할 총 4630만 엔(약 4억 500만 원)의 코로나19 지원금이 모두 한 사람의 계좌로 송금된 것이다. 게다가 해당 주민이 잘못 입금된 돈을 온라인 도박으로 탕진한 사실까지 알려졌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세상에 충격을 준 일은 따로 있었다. 마을 관공서가 금융기관으로 데이터를 보낼 때 ‘20세기 유물’인 플로피디스크를 사용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플로피디스크는 초기 PC 시대를 대표하는 보조 저장 장치다. 1971년 IBM이 처음 출시한 디스크는 8인치 크기에 80KB(1KB=약 0.001MB)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었다. 이후 더 작고 용량이 큰 5.25인치, 3.5인치 디스크가 보급돼 1990년대 중반에는 세계 연간 판매량이 50억 개에 달할 정도로 보편화됐다. 하지만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고 USB·클라우드 등 대용량 저장 수단이 등장하면서 플로피디스크는 설 자리를 잃었다. 2011년 3월에는 마지막 생산 업체였던 소니도 생산을 중단했다.
그런데 플로피디스크가 끈질기게 살아남은 곳이 있다. ‘아날로그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관공서다. 2022년 당시 행정 문서를 플로피디스크 형태로 제출하도록 명시한 규제는 무려 1034건에 달했다. 시대를 거스르는 낡은 규제들은 일본을 ‘디지털 후진국’으로 전락시켰다. 2022년 8월에야 고노 다로 디지털 담당 장관이 약 9000건의 ‘아날로그 규제’ 철폐와 함께 플로피디스크 퇴출을 선포하고 행정 디지털화에 시동을 걸었다. 최근 고노 장관은 “1034건 중 마지막 1건의 규제가 이달 중에 사라진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도 낡은 규제들이 많다. 1977년에 ‘사치품’ 소비 억제를 위해 자동차에 부과하기 시작한 개별소비세는 47년째 방치되고 있다. 대기업집단지정제·동일인지정제 등 30년 묵은 대기업 규제들도 여전하다.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기업을 움츠리게 만드는 시대착오적인 규제를 과감히 혁파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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