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폭염으로 인한 이슬람 성지순례(하지) 사망자가 벌써 1300명을 넘긴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이들 대부분이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순례자인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각국 정부가 순례자들을 상대로 불법 영업을 벌인 여행 업체의 면허를 취소하는 등 뒤늦게 대응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하드 알잘라젤 사우디아라비아 보건부 장관은 23일(이하 현지 시간) 국영 알에크바리야TV에 출연해 하지 기간(14~19일) 중 온열질환으로 숨진 순례자가 총 1301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사망자의 6배를 넘어서는 수치다. 매년 이슬람력 12월 7~12일에 치러지는 하지는 무슬림이 반드시 행해야 하는 5대 의무 중 하나로, 매년 인근 20여 개국에서 200만 명의 순례자가 참여한다.
특히 올해는 하지 기간이 여름과 겹친 데다 극심한 기온 상승으로 피해가 커졌다. 사우디 국립기상센터(SNCM)에 따르면 올해 하지 기간에 메카 대사원 및 인근 일일 최고기온은 섭씨 46~49도를 기록했다. 알잘라젤 장관은 “하지 시즌의 기온 상승은 올해 큰 도전이었다”면서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온열질환 이외에도 압사 사고와 전염병 등 하지 순례객들의 대규모 사망 사고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그 이유로는 무허가 순례에 나설 수 있도록 알선하는 무면허 여행사, 불법 브로커, 밀수업자 등이 꼽힌다. 사우디 정부에 따르면 올해 180만 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하지에 공식 등록했으며 등록 없이 순례에 나선 이들은 4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 순례자 5명 중 1명가량이 불법으로 순례에 나섰다는 의미다. 올해 사우디 당국은 무허가 순례자 수만 명을 단속해 추방하기도 했다.
실제 사우디 정부에 따르면 올해 사망자의 83%는 공식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순례자들로 나타났다. 순례자들은 사우디 정부가 쿼터제에 따라 각국에 할당한 하지 허가증을 취득해야 하지만 상당수가 공식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순례에 나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 패키지를 신청하기 위해 5000달러에서 1만 달러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이를 악용해 일부 불법 여행업자들이 순례자 전용 비자가 아닌 일반 관광 비자를 판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허가 순례자들은 어렵게 성지에 도착하더라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호텔이나 숙소에 머무를 수 없기 때문에 불볕더위 속에서 며칠을 보내다 사망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각국 정부도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올해 사망자가 가장 많은 이집트 정부는 비공식 비자를 발급해준 16개 여행 업체의 면허를 취소했고 튀니지는 대통령이 종교부 장관을 해임 조치했다. 또 요르단 검찰은 불법 여행업자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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