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고령화·이민 등 각종 인구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가 신설된다. 각 부처의 저출생 정책 예산을 사전에 심의하고 재정 당국에 관련 예산을 편성하도록 요구하는 막강한 인구 컨트롤타워다. 국회 여소야대 국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정무장관 자리를 부활시키는 한편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여성가족부 폐지는 유예하기로 했다.
정부는 1일 이러한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이달 중 정부조직법과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올 5월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저출생대응기획부(가칭)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뒤 전날 고위 당정협의 등을 거쳐 마련된 내용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정부 조직은 19부·3처·19청·6위원회에서 20부·3처·20청·6위원회로 확대된다.
인구부는 저출생뿐만 아니라 고령사회 대응, 인력·이민 등 인구정책 전반을 책임진다. 보건복지부의 인구정책, 기획재정부의 인구 관련 중장기 발전전략을 넘겨받고 과거 경제기획원 모델처럼 인구 분야의 전략·기획·조정을 담당한다. 경제기획원은 1961년부터 1994년까지 경제계획 수립 및 예산 편성, 각 부처의 기획·심사·조정 업무를 총괄했던 조직이었다. 인구부 신설에 따라 복지부는 출산·아동·노인, 고용노동부와 여가부는 일가정양립·가족·청소년 업무를 수행한다. 사회부총리가 교육부 장관에서 인구부 장관으로 바뀌는 만큼 인구부가 사회부총리 보좌 조직으로서 각종 사회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인구부가 막강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저출생 관련 예산 사전 심의 권한을 부여받는다. 인구부가 각 부처의 저출생 사업에 대한 사전 예산 배분·조정을 맡고 기재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예산 편성 시 이를 반영해야 한다. 현행 사회보장협의제도처럼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장이 저출생 사업 신설·변경하려면 인구부와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인구부의 정책 평가·수립·조정 등을 지원하기 위한 전문연구기관도 지정된다.
기존에 각 부처로 흩어졌던 인구 조사·분석·평가 기능은 인구부로 모인다. 통계청으로부터 인구동태 통계분석 기능을 넘겨받는 등 인구정책 기초자료로 쓰일 인구 관련 통계 분석·연구를 수행한다. 부처에 실장급 대변인을 설치해 통계를 비롯한 정책 홍보 기능을 강화한다.
인구부가 신설되면 대통령 소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인구부 장관 소속 자문위원회로 변경되고 사무처는 폐지된다. 기존 저고위가 저출산·고령사회 대응에 주력했다면 인구부는 기존 업무를 확대하는 동시에 이민이나 주거 지원 등 인구구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정책도 시행한다. 또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 위주로 참여했던 기존 위원회 틀에서 벗어나 인구위기대응위원회는 청년·양육 부모 등 정책 수요자를 포함할 수 있도록 위원 범위를 넓힌다. 이를 위해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인구위기대응기본법으로 개정한다.
김정기 행정안전부 조직국장은 “기존 저고위에는 구속력 있는 권한이 없었으나 인구전략기획부는 중앙행정기관으로서 독자적인 법률에 근거해 예산을 사전 심의하고 각 부처 사업을 평가 및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최상위 전략인 인구 관련 국가발전전략을 세워 각 부처에 실질적인 권한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임 장관 제도가 도입됐던 이명박 정부 이후 10여년 만에 정무장관직이 부활하는 점도 이번 조직 개편안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정무장관은 민생 및 주요 개혁과제 관련 이해관계의 갈등을 조정하고 국회와 정부 간 원활한 소통을 담당하는 국무위원으로서 윤석열 정부가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을 설득할 주요 구심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무장관은 대통령이 특별히 지정하는 사무 또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무총리가 특별히 지정하는 사무를 수행한다. 조직은 장관 업무 보좌를 위한 최소한의 기구·인력으로 구성된다.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폐지 공약을 내건 여가부 문제는 이번 개편안에서 빠졌다. 윤 대통령이 여가부 장관 자리를 5개월째 공석으로 두면서 여가부 폐지를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정부는 일단 여가부 존치를 결정했다. 여가부 폐지 법안이 21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폐기됐고 정부 자체 입법으로 여가부 폐지를 추진할 계획이 현재는 없기 때문에 당분간 여가부를 현행대로 유지하고 의견 수렴 및 내부 논의 과정을 더 거치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정부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장관 인사청문회 등 약 3개월 후 새 부처가 출범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관건은 야당의 협조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여야, 정부와 야당 관계가 최악인 만큼 정부 기대대로 정기국회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국가재정법상 기획재정부가 예산편성권을 틀어쥔 상황에서 인구부가 얼마나 예산 편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정부는 정부조직법에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기재부가 인구부 의견을 존중한다는 표현을 명시할 방침이지만 얼마나 강제성이 있을지 미지수다. 김 국장은 “야당도 인구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고 저출생 국가 총력 대응에 사회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있다는 판단”이라며 “조속히 국회에 법안을 발의해 정기국회 때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