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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기업 성장해야 생산성 제고…규제 철폐로 혁신 생태계 조성해야”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경제대학원장)

소기업 비중 OECD 1위…과도한 규제로 혁신성장 막혀

‘나눠주기’ 보호정책보다 잠재력 있는 기업 집중 지원을

기존 질서 벗어나 기업 변화 일으킬 파격적인 정책 필요

매력적 투자환경 조성 못하면 성장동력 잃은 ‘일본 전철’

박정수 서강대 경제대학원장이 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성장에서 탈출하려면 혁신에 의존하는 성장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면서 “기업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 규제 완화와 혁신 유도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최근 미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돌파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는 첨단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등극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혁신적 스타트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역동적 성장 생태계가 작동하는 미국 경제가 승승장구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촘촘한 규제들이 혁신을 가로막고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인재들이 떠나가고 기업투자가 위축되면서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터널에서 벗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 생태계 발달을 저해하는 규제 환경을 개선하고 혁신 수용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도한 규제와 중소기업 보호 정책은 혁신 기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면서 “소기업에 치중된 기업 분포를 해소해야 생산성도 제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매력적인 투자 환경을 만들지 못하면 산업 공동화로 성장 동력을 잃은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심각한 상황이다. 수요 측면에서는 주력산업 수출에 의존해온 중국의 성장 둔화와 내수 중심 정책, 미중 갈등과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 등으로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공급 측면에서도 투자 위축, 인구 감소로 인해 생산요소 축적에 기반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지금까지 작동해온 성장 경로가 막힌 상황이다. 올해는 성장률이 다소 나아지겠지만 구조적 문제 때문에 장기적 저성장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외부 요인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내부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공급 측면의 성장은 자본 축적과 인적 자본 확충, 혁신을 통해 가능한데 자본이나 노동에 의한 요소 축적형 성장에 의존하는 시기는 지났다. 이제 혁신에 의존하는 성장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혁신의 관점에서 우리 경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기업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제도나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역동적 혁신 성장’이라는 비전을 내걸었지만 이 같은 방향성에 걸맞은 질적인 제도 변화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기업이 체감할 만한 파격적 규제 완화나 혁신 유도 정책보다는 기존 제도나 규제를 조금 완화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기존 지원 정책이나 제도를 심도 있게 점검해 실효성이 없으면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혁신은 결국 사람에서 나오는 것인데 교육 투자와 개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턴어라운드는 어렵다.

-인재의 해외 이탈, 고급 두뇌의 의대 쏠림으로 기업들의 인재 확보도 어려운 상황이다.

△반도체학과로 진학하는 학생들 중 상당수가 자퇴하고 의대로 진학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안정적 보상 때문이다. 첨단 분야에서 큰 보상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국내 대기업들이 10년, 20년 뒤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리스크를 감안한 기대소득이 지금보다 훨씬 커지지 않는다면 우수 인력을 유인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고급 인력을 양성하려면 우수한 교육자를 확보해야 하는데 대학에 대한 투자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인재 육성과 확보는 요원하다.



-인구 감소로 노동력은 줄어드는데 생산성이 낮은 것도 문제다.

△사실 대기업의 노동생산성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 특히 50인 미만 소기업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 규모는 미국보다 평균 1.4배나 큰 반면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미국의 절반 크기다. 특히 소기업의 고용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인데 기업 영세성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생산성은 기업 규모와 연관성이 크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춰야 분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우선 규모의 격차가 생산성의 격차를 낳는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업 성장이 원활히 이뤄져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은 무엇인가.

△기업 성장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역량 있는 기업들을 발굴해서 집중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중소기업 문제를 대-중소기업 양극화, 불공정거래의 문제로 치부하고 혁신 기업 지원보다는 소기업 보호와 대기업 규제에만 집중해왔다. ‘나눠주기식’ 중소기업 보호 정책은 기업 생존에는 도움을 줬지만 잠재력 있는 혁신 기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아울러 경제가 성숙하면서 법·제도와 규제가 촘촘해졌다. 그런데 대기업을 염두에 두고 규제를 만들다 보니 너무 높은 수준의 규제 환경이 됐다. 중소기업 역량으로는 이를 뛰어넘기 어렵다. 가령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데 50인 미만 소기업이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갖는 스타트업도 미처 자라기도 전에 규제 리스크에 직면해 성장이 막혀 버렸다. 게다가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합병(M&A)을 규제하니 엑시트(Exit)도 원활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이 기업 생태계 발달을 저해하고 있다.

-과도한 규제가 성장 동력을 가로막는 것이 분명한데도 왜 규제는 사라지지 않는가.



△우리나라가 홍콩을 대신하는 금융허브가 되지 못한 것은 그에 필요한 대대적인 규제 철폐를 국민들이 불안해 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먼저 규제에 대한 태도와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까지 풀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규제를 풀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고꾸라진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사고가 나거나 이슈가 생기면 직접적 규제부터 만들려고 하지 않나. 규제로 인한 간접적 영향까지 충분히 숙고해야 쉽사리 규제를 만들지 않고 혁신도 가능해진다. 규제 철폐에 따른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혁신 수용 사회가 돼야 한다.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요국들이 공격적 산업 정책을 펴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는 완전히 깨졌다. 중국발 정부 개입을 통한 새로운 경쟁 유형에 우리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 다만 글로벌 경쟁을 의식한 산업 정책이 결국 대기업 지원책이 될 수밖에 없다 보니 정치적으로 주춤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반도체 특별법 논의를 보면 이제 우리 정부와 정치권도 시급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글로벌 추세를 감안해 보조금 직접 지원 방안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본다.



-우리 경제가 지나치게 반도체 산업에 의존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미래 기술 주도권과 직결되는 반도체나 수출 주력품인 자동차는 매우 중요한 필수 산업이다. 다만 지나치게 특정 산업에 의존하면 변동성 측면에서 리스크가 커진다. 제조업 내 전자 산업 비중이 50%를 넘는 대만 경제는 정상적인 구조가 아니다. 우리 경제구조상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반도체처럼 굵직한 새로운 리딩 산업이 나와야 한다.

-주목하는 산업 분야가 있다면.

△첨단 기술이 뒷받침하면서 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을 찾아야 한다. 다만 제조 기업들은 점차 고용 규모를 줄여가는 추세다. 그런 면에서 첨단 제조와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유통이 연계된 융복합 산업이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 문제는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서비스업이 고도화돼야 하는데 국내 서비스업은 규제의 돌덩어리에 꽉 막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 정부의 기업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전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을 막았다는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다만 기업 체감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아직 조성하지 못했다. 정말 많은 정책이 나왔지만 기업들에게 임팩트를 주는 정책으로 기업들의 행동에 변화를 주지 못했다. 기존 정책을 조금씩 확장하는 수준에 그치지 말고 기존 정책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실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가.

△중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효성 있는 연구개발(R&D) 지원과 인재 육성책이다. 또 매력적인 환경을 만들어 국내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경상수지에서 본원소득수지가 증가하는 추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본원소득수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곧 우리 공장이 해외로 나가 있다는 의미다. 일본은 20~30년 동안 진행된 산업 공동화에 발목이 잡혀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노동·환경·입지 등 촘촘한 규제가 들어선 투자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

△무엇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우리 경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정책 입안자나 정치인들의 입맛에 맞춘 진단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명확한 진단을 내려야 한다. 조금 시간이 걸려도 정확하게 진단해야 제대로 방향을 잡고 올바른 해결 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

◆He is…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버펄로 경제학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경제대학 학장 겸 경제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경제학회 부회장, 한국응용경제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도전에 직면한 한국 경제’ ‘은행산업 발전을 위한 금융개혁 방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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