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교육의 질을 평가·인증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 원장의 언론 인터뷰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이사회 구성 변경을 요구한 데서 촉발된 파장이 의료계에서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부산대 의대 교수진은 8일 성명서를 내고 "정부는 의평원을 겁박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한국의) 의평원은 미국, 일본과 함께 의학 교육에 관한 전문성을 갖는 공식적인 인증기관"이라며 "의평원 이사회는 이미 다양한 공익 대표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충분히 다양한 구성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이는 앞서 오석환 교육부 차관이 지난 4일 브리핑에서 "(안덕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이 의학 교육의 질 저하에 대해 근거 없이 예단하고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지속해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밝힌 것을 겨냥한 것이다. 당시 오 차관은 "정부가 의료개혁에 따른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평가에 반영하고 의평원 이사회에 의료분야 소비자단체 등이 추천한 공익대표를 포함해 달라"고 발언해 의사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부산대 의대 교수들은 "교육부가 의대 교육 과정에 있어 학년제나 강제 진급을 예고하는 것도 모자라 30여년 전 기준인 교수 1인당 학생 8명을 주장하고 있다"며 "정원 수요조사와 교육의 질적 평가를 혼동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 건강을 책임질 의사 양성은 신중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며 "교육부가 의대 증원에 따른 의학 교육 선진화를 준비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의대 교수들에게 모든 자료와 계획, 예산을 공개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공개 토론에 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차관의 발언 이후 의료계 내부에서는 "정부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의대교육 평가 및 인증을 수행해야 할 의평원의 독립성을 공공연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성균관대와 서울대, 울산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등이 의평원에 대한 압박과 흔들기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공동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가톨릭대, 강원대, 건국대, 경희대, 단국대, 동아대, 아주대, 연세대 등 전국 30개 의대 교수 비대위와 교수회는 이날 공동 성명을 냈다. 성명에는 교육부가 지난 4일 브리핑 이전에도 의평원을 통제하고 좌지우지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의혹이 담겼다.
이들은 "교육부가 지난 5월 의평원을 의대 평가 인증 인정기관으로 재지정 통보할 당시 보낸 공문에서 교육부 산하 '인정기관심의위원회의 사전심의'라는 전례없는 조건을 달았다"며 "교육부가 의평원을 좌지우지겠다는 참으로 나쁜 의도를 드러낸 격"이라고 주장했다. '주요변화계획서 평가, 중간평가를 포함한 평가·인증의 기준, 방법 및 절차' 등 변경 시 인정기관심의위원회에서 사전 심의를 하겠다는 건 부실한 의학 교육 여건에 아랑곳없이 무조건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뜯어고치겠다는 교육부의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여지며, 재지정 조건을 문제 삼아 언제든지 의평원에 대한 인정기관 지정 취소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의 의학교육 여건 개선 계획으로는 다수의 대학에서 인증을 받지 못할 것을 교육부도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라며 "교육부는 교육부 산하 인정기관심의위원회를 통한 의평원의 독립성 침해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의평원장, 의평원이라는 의학교육 평가 인증 전문가 그룹을 폄훼하고 모독하는 데 앞장선 교육부 오석환 차관을 비롯한 담당 공무원들은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며 "의평원 사전심의라는 나쁜 편법을 기획한 담당자는 경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의평원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의대교육 평가·인증으로서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독립적인 평가·인증 업무를 수행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평가 결과의 공정성·타당성·신뢰성을 위해서 기존에 의평원이 공표했던 기준에 맞춰 질적으로 잘 평가하겠다는 의평원장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고 존중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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