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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NA 미친 여자' 비아냥이 최고의 훈장이 된 과학자 [정혜진기자의 사람한권]

■돌파의 시간(까치 펴냄)

2023 노벨상 수상자 커털린 커리코

과학자로서의 사명감 외에도

푸주한의 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엄마 이야기

커털린 커리코 헝가리 세게드대 교수 /사진 제공=노벨상 아웃리치




2020년 1월 10일 중국의 바이러스 학자이자 교수인 장융전은 당시만 해도 ‘우한 폐렴’으로 불리던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처음 공개했다. 총 29개의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약 3만 개의 A, C, G, T 글자 나열이었다. 몇 주 뒤 독일의 제약회사인 바이온텍은 화이자와 협력해 코로나19 백신을 제작하기로 구두 합의했다. 이때 바이온텍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맡은 한 생화학자가 미국에 가족을 방문했다가 발이 묶였다. 미국 정부가 그해 3월 19일부터 국경을 폐쇄하고 비필수 여행을 금지하면서다. 동료들로부터 떨어진 채 지휘, 감독해 개발한 백신은 2020년 12월 8일 영국에서 첫 접종을 이끌어냈다. 이어 미국이 6일 뒤인 12월 14일 화이자 백신을 첫 접종했다.

코로나19 백신 이전에 가장 빨리 만들어진 백신은 1960년대 개발된 볼거리 백신으로 4년이 걸렸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4년이라는 시간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의 목숨과 맞바꿔야 하는 시간이었다. 코로나19 백신은 이 기간을 열달 이내로 단축해냈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는 신속성의 가장 큰 이유로 ‘메신저리보핵산(mRNA)’가 가진 특성을 꼽았다. 항원의 유전자 염기서열만 알면 그 항원을 암호화하는 mRNA를 만들고 이를 지질 운반체에 빠른 시간에 넣어 옮길 수 있다는 것. 하지만 mRNA로 백신을 만든다는 발상은 이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그 뒤에는 그간 ‘mRNA에 미친 여자’라는 비아냥을 감수했던 한 여성 과학자가 있었다.

2013년 어느 날 미국 필라델피아의 펜실베니아대학교(유펜)에서 일하던 커털린 커리코는 자신의 실험 집기들과 물품들이 복도로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학교 측에서는 ‘실험실 사용료’를 내기 위해서는 연구비를 따와야 하는데 그녀의 연구는 돈을 따오지 못하는 연구라는 이유였다. 당시 학계의 대세는 유전자 치료였지만 그녀는 학계에서는 생소한 ‘mRNA 치료’에 몰두해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정교수였던 적이 없다. 학교 측에서는 ‘교수가 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선임 연구원이라는 직책으로 강등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유전자 치료를 믿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유전자 치료와 mRNA 치료법에는 각각의 역할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연구기관이 두 방식에 모두 열려 있기를 바랐다.” - 같은 책 221쪽 中

커털린 커리코(왼쪽) 헝가리 세게드대 교수와 연구 동료인 드루 와이즈먼 유펜 교수 /사진 제공=노벨상 아웃리치


그럼에도 그가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였다. 언젠가 mRNA가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백신으로서 빛을 볼 것이라는 것. 급하게 자신의 실험 보고서를 챙기며 그녀는 단언했다. “언젠가 이 연구실은 박물관이 될 겁니다.” 커리코는 유펜에서 일하는 동안 어떤 직책도 얻지 못했지만 ‘mRNA에 미친 여자’로 통했다. 만나는 사람의 전공에 관계 없이 같이 연구하자며 ‘mRNA 영업’을 하다 보니 얻게 된 별칭이었다. 대부분은 냉담한 반응으로 응답했다.

어떤 mRNA든 구현해낼 수 있는 그와 면역세포를 타깃하는 백신을 개발하고자 했던 면역학자인 드루 와이즈먼과의 만남은 ‘자물쇠와 열쇠’의 만남이 됐다. 과를 넘나들며 20년 간 함께 연구를 이어간 이들은 지난해 코로나19 백신의 신속한 개발에 대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자연은 자물쇠와 열쇠처럼 한 쌍의 관계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두 개의 아주 다른 분자 ㅡ 예를 들면 효소와 그 효소가 작용하는 기질ㅡ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관계이다. 둘이 만나면 상보적인 부분이 서로 단단히 결합하여 제자리를 찾고 그때부터 놀라운 사건이 연쇄적으로 전개된다.(중략) 드루와 나는 아주 달랐지만 각자 정확하게 상대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면역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RNA 과학자였고, 그는 RNA 경험이 없는 면역학자였다. 우리의 결합은 변화를 모든 것을 변화시킬 사건들에 시동을 걸었다.” - 돌파의 시간 272쪽 中

2021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미래는 헝가리인이 쓴다’는 문구와 함께 생화학자 커털린 커리코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까치


커리코의 회고록인 신간 ‘돌파의 시간(원제 Breaking through)’에서는 연구 행로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성취 과정이 몰입감을 높인다. 헝가리에서 푸주한의 딸로 태어난 그는 쭉 주변인이었다. 아버지가 공산당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력이 발목을 잡았다. 헝가리 최고의 대학인 세게드대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을 냈지만 헝가리 최대 생물학 연구소 BRC에서는 승진은 커녕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그가 지푸라기 잡듯 택한 것은 미국 땅이었다. 당시 50달러 이상 소지한 채 출국하는 게 불법이었던 그는 고육지책으로 어린 딸의 애착 인형에 전재산 1200달러를 숨겨 미국으로 향한다.

미국에서는 mRNA 연구를 평탄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난관은 끝나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비자를 인질 삼아 연구실을 떠나면 이민국에 신고해 추방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지도교수로 인해 노예 연구자 생활을 이어갈 뻔하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 최종 목적지였다. 일단 가기만 하면 그 나라가 제공하는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철망 뒤에 서 있으면서 그제야 깨닫기 시작했다. 미국에는 계급이 있고, 목적지 안에 목적지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나라와 이 동네에는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쪄 죽을 것 같은 날에도 눈앞에 있는 수영장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 같은 책 181쪽 中

그는 어떤 상황이 닥치든 ‘한 가지만 더(One more thing)’를 새긴다. 사실 ‘한 가지 더’는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마법의 문구’로 통했다. 그가 한 가지만 더를 외치는 순간 얇은 종이 봉투에서 맥북 에어가 등장했고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작동하는 아이폰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마법은 캐털린의 돌파에서도 작용했다. 질문 한 개만 더, 실험 한 번만 더, 생각 한 번만 더.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지도교수가 되어 한 가지씩 자신을 채찍질 했다. 그렇게 읽은 논문이 9000편이 넘는다. 표와 참고문헌까지 샅샅이 읽는 수준이다.

“한 가지만 더. 그것이 내가 점점 나아진 비결이었다. 질문 한 가지만 더, 실험 한 번만 더, 한 가지만 더 생각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과제 한 가지만 더 시도해보자. 나는 읽고 또 읽고 그런 다음 다시 시작했다. 나는 외우고 방금 공부한 것을 시험해 보고, 그런 다음 확실하게 이해할 때까지 더 공부했다. 또 하고, 또 하고, 한 가지만 더, 한 번만 더.” - 같은 책 103쪽

/사진 제공=까치


처음 mRNA 백신을 만들 때 염증 반응이 나오자 이를 극복하는 과정도 돌파 그 자체다. 염증 반응으로 인한 면역 이상인 ‘사이토카인 폭풍’ 사망자가 발생한 뒤 연구실에서 ‘염증=실험 종료’로 여겨지던 순간에 변형된 mRNA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때의 반응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이 결과를 위해 노력했으면서도 다시 한 번 정확한 결과를 검증하는 데 집중하는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 이는 이전의 발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과학자들은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부력의 원리를 알아낸 순간)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고대하며 실험실 냉장고에 샴페인을 미리 넣어둔다. 이 순간은 어느 모로 보아도 그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것도 아주 대단한. 그러나 엘리엇과 앨리스와 나는 샴페인을 따지 않았다. 그 순간에도 나는 평소대로 했다. 나는 일로 돌아갔다. 이제 이 실험을 다른 양의 mRNA, 다른 세포주를 사용해서 다시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내 머릿속은 이 실험을 수없이 변형하여 재시험하고 계속해서 결과를 재생할 생각으로 질주했다. 늘 그랬듯이 나는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는 결과를, 누구라도 같은 과정을 거치면 똑같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 같은 책 249쪽 中

/사진 제공=빈티지 퍼블리싱


동시에 조정 분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관왕인 딸 수전의 엄마로서의 이야기도 흥미를 끈다. 특히 딸인 수전의 올림픽 도전과 같은 시기에 mRNA의 염증반응을 없애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거듭하는 장면이 병치돼 경외감을 준다.

“조정과 과학이 닮은 점은 또 있다.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목표, 새로운 실험, 자신을 증명할 새로운 기회를 향해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도 수전은 돌아오자마자 다음 올림픽에 나갈 여덟 장의 출전권을 놓고 경쟁하는 또다른 조정 선수가 되었다. 한 번 세계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특별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 - 같은 책 323쪽

그는 말한다. “실험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틀린 것은 당신의 기대일 뿐.” 202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뒤 모교인 세게드대에 부임한 그는 오늘도 낡아가는 지식과 싸우며 돌파한다. 그의 여정이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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