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세계 최초로 ‘탈원전’을 선언했던 이탈리아가 35년 만에 원전 재도입을 추진한다. 이탈리아 정부의 이러한 결정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만으로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질베르토 피케토 프라틴 이탈리아 환경에너지부 장관은 14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10년 안에 소형모듈원전(SMR)이 가동될 수 있도록 관련 투자를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며 “수입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2050년까지 전체 전력 소비량의 11% 이상을 원전이 담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우파 정부는 태양광발전 확대가 이탈리아 식량 안보를 위협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피케토 프라틴 장관 역시 “이탈리아에는 태양 전지판을 위한 여유 공간이 없다”며 "태양광발전 단지에 필요한 토지의 일부만 필요한 소형 원전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이탈리아 환경단체 레감비엔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5%가 원전이 이탈리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고 25%는 안전상의 이유로 반대했다. 반면 37%는 원전이 지금보다 더 안전하다면 이탈리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피케토 프라틴 장관은 “차원이 다른 안전성과 장점을 지닌 신기술이 나온 터라 그동안 여러 차례의 국민투표에서 드러난 원전을 향한 국민적 혐오감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1960~1970년대에 4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했으며 이후 야심 찬 원전 확대 계획까지 수립했다. 그러나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지자 원전 개발에 대한 보조금을 중단하는 국민투표를 거쳐 탈원전을 결정했다. 반핵 정서가 고조되는 가운데 실시된 투표에서는 국민의 80%가 탈원전을 지지했다. 당시 운영되던 원전 4기는 즉각 가동이 중단됐고 1990년을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원전이 완전히 폐쇄됐다.
이상기후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정전 사태가 잇따르면서 전력망 확충 문제는 주요 국가들의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컨설팅 업체 블룸버그NEF(BNEF)에 따르면 전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위한 넷제로(net-zero)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망을 확장하는 데 약 24조 1000억 달러(약 3경 3327조 8900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BNEF의 분석가 펠리시아 아미노프는 “폭염으로 인해 에어컨 사용량이 높아짐에 따라 앞으로 전력망에 더 많은 부담이 가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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