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국화도 현대 회화가 될 수 있을까. 서구식 추상화가 점령한 한국 화단에서 파랑, 빨강, 노랑 등 색깔을 입힌 현대적인 감각으로 한국화를 재해석하는 실험을 이어온 김선두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달이 밝게 뜬 숲길을 거니는 듯 서정적으로 꾸며져 있다. ‘푸르른 날에’라는 전시 제목은 서정주의 시 ‘푸르른 날’을 차용한 것으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연 풍경을 담은 ‘낮별’ 연작 등 신작뿐 아니라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그린 초상화 연작도 함께 소개한다.
영화 ‘취화선’ 속 그림을 그린 것으로 잘 알려진 김선두는 ‘수묵과 붓’ ‘난’으로 대표되는 한국화의 본질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한국화가 현대 회화로 나아가는 방향을 모색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교과서 속에서 흔히 본 수묵화가 떠오르지만, 아파트 거실 벽에 붙여둘 만큼 색과 구도가 현대의 풍경화와 닮아 있다.
전시에서는 장닭, 곤줄박이와 같은 깊은 숲에서나 보이는 새들이 과자봉투를 뜯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작가는 먹을 것을 바라보는 새의 모습을 통해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씁쓸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의 풍경이다.
작가는 장지에 분채를 여러 번 쌓아 올리는 한국화 기법을 통해 바탕색이 짙게 발색하는 독특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전통 초상화를 그릴 때 쓰는 기법을 풍경에 적용한 것으로, 이같은 기법은 특히 작품 속 달과 별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달이 밝게 뜬 밤 풍경을 묘사한 ‘밤길’과 ‘낮별’, ‘지지 않는 꽃’, ‘아름다운 시절’ 등 여러 연작이 이같은 실험 정신을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전시장 끄트머리에서는 가로 8m 크기의 대형 작품 ‘싱그러운 폭죽’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 주제 전체를 함축하는 이 작품 속에서는 ‘꽃’을 ‘땅이 쏘아올리는 폭죽’으로 생각한 작가의 상상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폭죽이 터지는 순간을 꽃에서 꽃망울이 피어나는 순간으로 묘사하고, 폭죽의 불꽃이 흩어지는 모습은 꽃가루가 휘날리는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불꽃이 터지는 순간 절정에 이르고 이후 소멸하는 폭죽처럼, 목표를 이룬 후 공허해지는 인간의 삶을 보여주고자 한다.
전체 작품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초상화 연작 ‘아름다운 시절’도 눈에띈다. 작가는 유튜버 침착맨(웹툰작가 필명 이말년), 야구선수 선동열, 시인 김수영 등의 초상을 그렸는데 화면 하단에 인물의 일정을 쓰고 지우고 덧붙인 흔적을 그대로 남겨둔 것이 눈에 띈다.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반복성과 그 속의 변화를 표현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과 그 안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환기 시킨다.
작가는 올해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후 전통 미감을 유화, 사진, 설치 등 새로운 미디어로 풀어보는 새로운 시도도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중 작가의 유화 신작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8월17일까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