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도쿄 올림픽 폐막에 맞춰 공개된 한 장의 사진은 3년이나 남은 파리 올림픽을 일찌감치 기대하게 했다. 각국 선수단을 실은 여러 척의 배가 에펠탑을 배경으로 노을 속의 센강을 이동하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 상상이 현실로 바뀔 시간이 다가왔다. 27일 오전 2시 30분(한국 시각) 시작되는 파리 올림픽 개막식의 무대는 스타디움이 아니다. 좁게는 센강이고 넓게는 파리 일대다.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경기장이 아닌 곳에서 펼쳐지는 개막식이다.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는 코로나19가 극성이던 3년 전 스타디움을 벗어난 ‘모두에게 열린 개막식’을 제시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19가 그때면 없어질까’ ‘폭이 좁은 센강에서 과연 가능할까’ 같은 의문이 붙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는 거의 의식하지 못할 만큼 잦아들었고 파리는 수상 개막식의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3일 외신 기자들을 엘리제궁에 초청한 자리에서 “처음에는 헛소리 같고 진지하지 않은 아이디어로 보였겠지만 우리는 지금이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했다”며 “센강 개막식과 수상 행진을 가능하게 한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개막식 콘셉트는 간단하다. 각국 선수단 6000~7000명을 실은 85척의 배가 파리 식물원 근처 오스테를리츠다리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에펠탑 건너편 트로카데로광장까지 6㎞를 행진하는 것이다. 개막식 연출은 오페라·연극·뮤지컬 연출가인 토마 졸리 감독. 졸리 감독은 “올림픽 개막식의 전통을 뒤집고 싶었다. 공연과 선수 행진, 의전 이 세 요소로 나뉘었던 행사를 우리는 한데 묶어 거대한 프레스코화(회반죽벽에 그리는 벽화)를 그릴 것”이라고 했다.
12개 섹션으로 진행될 개막 공연의 투입 인원은 3500명. 이들은 강둑과 다리, 주변 건물 등을 자유롭게 무대로 삼는다. 2019년 화재 이후 복원 중인 노트르담대성당은 공연의 하이라이트 무대가 될 것으로 전해졌다. 강물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깜짝 요소도 있다고 한다.
센강 양편으로 특설 관중석이 설치됐는데 이곳 입장권은 최대 400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굳이 관중석에 자리를 잡지 않아도 강가나 주변 아파트 발코니에서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쇼를 관람할 수 있다. 그래서 관람 인원은 최대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인 스타디움 개막식이었다면 그 수는 수만 명에 그쳤을 것이다.
스타디움 개막식과 달리 완전한 리허설 자체가 불가능하다. 선박 간 적정 거리, 속도 등을 수차례 시험했지만 그 외 변수들이 너무 많다. 스케일의 차원이 다르다 보니 통제도 어렵다. 파리는 경찰 등 보안 인력만 4만 5000명을 배치할 계획이다.
개막식은 현지 시각으로 26일 오후 7시 30분에 시작된다. 관람객들과 20억 시청자들은 밝은 해가 비추는 파리와 노을 속의 파리 그리고 행사 후반부 어둠 속에 빛나는 파리까지 파리의 아름다움을 세 가지 얼굴로 감상하게 된다. 후반부는 밤을 밝히는 화려한 라이트 쇼로 장식될 예정이다. 졸리 감독은 “파리의 하늘과 물·강둑·다리가 주어졌다. 아름다운 시를 쓸 재료가 넘쳐난다”며 “메시지는 ‘사랑’이다. 프랑스가 존중하는 다양성의 가치를 다양한 재료로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혁명을 출발로 한 현대사의 물줄기도 되짚을 예정이지만 개막식 연출자 중 한 명은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나타난 노골적인 내셔널리즘과는 정반대 방향일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센강은 수질 논란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파리시 당국과 대회 조직위원회가 15억 유로(약 2조 2500억 원)를 들여 수질 개선 작업을 벌였지만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그럼에도 철인3종 중 수영 경기와 10㎞ 마라톤 수영이 센강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림픽 일부 종목의 센강 경기를 언급하며 “올림픽이 끝난 뒤 프랑스인들도 센강에서 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올림픽이 남기는 유산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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