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임명 강행 초읽기에 들어갔다. 엿새간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방송4법(방송통신위원회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곧바로 재의요구권(거부권) 카드를 꺼내들 태세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이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된 뒤 공영방송 이사 선임 절차를 밟는 즉시 탄핵에 나서겠다고 벼르고 있다.
윤 대통령은 30일 국회에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송부를 요청하면서 송부 기한을 이날 하루로 지정했다. 사실상 31일 곧장 이 후보자를 임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 임명도 이러한 방식으로 처리했다. 앞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29일 이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을 보류했다.
윤 대통령이 속전속결로 이 후보자 임명을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야권의 탄핵 추진으로 이상인 전 방통위원장 직무대행(부위원장)까지 자진사퇴하면서 방통위가 1명의 상임위원도 없는 초유의 ‘0인 체제’가 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을 강행하려면 최소 2인의 위원이 필요한 만큼 31일 이 후보자와 함께 이 전 부위원장의 후임도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 이 전 부위원장의 후임으로는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거론된다. 이 후보자가 이르면 취임 당일 전체회의를 소집해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 의결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야당은 윤 대통령이 ‘군사작전’ 하듯 이 후보자 임명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방송을 장악해 언론을 권력의 나팔수로 만들었던 역대 독재정권들의 말로는 한결같이 비참했다”며 “언론 탄압에 방송 장악까지 한다면 독재국가로 전락했다는 세계의 비판과 조롱만 받고 국격도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후보자에 대해서는 취임 전부터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에 임명돼 의결되면 ‘방통위 2인 체제’ 불법성을 근거로 즉각 탄핵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5인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에서 ‘2인 체제’로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방통위 설치법 위반이자 규칙 위반이라는 이유에서다. 야권이 방통위원장 탄핵을 추진하는 것은 이동관·김홍일 전 위원장에 이어 세 번째다. 이상인 전 직무대행까지 범위를 넓히면 방통위를 상대로만 벌써 네 번째 탄핵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야당이 다음 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임기 만료를 앞두고 방통위원장 인선을 막기 위한 인신공격성 인사 검증에 이어 탄핵 시도까지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임명하자마자 바로 탄핵을 강행하겠다는 게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이해가 되느냐”면서 “국민이 용납 못할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여당은 ‘방송4법’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방침이다. 추 원내대표는 “집권 여당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여야가 합의해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입장”이라고 힘을 보탰다. 다만 우원식 국회의장은 “(방송4법은) 대한민국 입법부가 오랜 토론을 거쳐 중요하게 결정한 사항”이라며 “거부권 행사에 대해 신중을 기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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