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오산업의 키워드는 ‘역동적인 안정성’입니다. 미국에서는 바이오벤처가 망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돼 있습니다.”
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이 주최한 행사에서 미국 바이오 업계의 특징을 이같이 정의했다. 미국에서는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무수한 실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임상시험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바로 회사가 휘청이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도 한국 바이오업계를 “실패에 대한 면역력이 없다”고 평가했다.
신약개발은 재무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깜깜이’ 기간이 최소 10년이다. 긴 시간을 투자한다고 무조건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임상 진입 후 최종 승인까지 성공률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연구개발(R&D) 비용도 최소 2조 원이 든다. 수익을 창출하는 일도 쉽지 않다. 타미플루로 유명한 길리어드사이언스는 1987년 설립 후 14년이 지나서야 흑자전환했다. 제약바이오가 ‘꿈을 먹고 사는 산업’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한국에서는 이같은 업종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가시적인 성과를 빨리 내도록 요구받는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는 “후보물질 단계와 임상 2상 단계에서의 기술수출은 가치평가가 천차만별”이라며 “‘일단 기술수출하자는 인식이 지배적인 게 아쉽다”고 말했다. R&D 능력을 축적해 후기 임상까지 끌고 가지 못하고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수출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국산 혁신신약을 개발할 기회를 놓친다는 점에서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바이오기업들을 조금 더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당장 산업 생태계 자체를 바꾸는 건 어렵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벤처캐피탈(VC) 중심으로 바이오 투자가 이뤄져 자금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차이도 있다. 단기적인 해법으로 법인세 비용 차감 전 손실에서 R&D 비용을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현재 R&D가 비용으로 잡혀 자금 여력이 부족한 바이오벤처들이 본업보다 건기식·화장품 등 부업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패 면역력을 기를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될 때 K바이오가 진정한 국가 핵심전략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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