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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의 '우주'는 왜 132억원에 팔렸나 [아트씽]

[소육영의 "이 그림 왜 비싼가요?"]

한국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 기록한

김환기 유일의 두폭 전면점화 '우주'

화가 업적에 전시·소장이력, 사연까지

2019년 11월 김환기의 최대 크기 전면점화이자 유일한 두폭화인 '우주'가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132억원(8800만 달러)에 낙찰됐다. /사진제공=CHRISTIE's




2019년 11월, 크리스티(Christie's) 홍콩 경매장에서 한국 미술시장 역사에 길이 남을 경매가 이뤄졌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국내외 미술 관계자들이 숨죽이며 단 하나의 작품을 바라보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8800만 달러(한화 132억원)! 8800만 달러! 프란시스 당신의 손님에게 낙찰됐습니다,”

경매사는 격양된 목소리로 전화로 대리 응찰 중인 프란시스 밸린(Francis Belin·크리스티 아시아 태평양 총괄 사장)을 향해 낙찰봉을 두드렸다. 경매의 주인공은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 수화 김환기(1913~1974)의 대표작인 ‘05-Ⅳ-71#200 우주’였다. 약 60억원인 4000만 홍콩달러에 시작해 10분 이상의 경합이 벌어졌다. 서면응찰과 전화응찰 그리고 현장응찰이 뒤섞인 서른세번의 경합이었다. 보통 한 작품의 경매는 1분 내외로 진행이 되기에 당시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터질 듯한 박수갈채 속에 한국 미술품 경매사상 처음으로 단일 작품이 100억을 넘어선 132억원에 낙찰됐고, 수수료를 포함해 152억원에 판매됐다.

2019년 11월 홍콩에서의 경매를 앞두고 뉴욕 크리스티 전시장에서 프리뷰 중인 김환기의 '우주' /사진제공=CHRISTIE's ⓒwhanki foundation


이 그림은 왜 비싼가요?


미술품은 아름다움의 추구를 바탕에 둔 감상재라는 역할이 가장 보편적이지만 점차 그 목적이 다양해져서 투자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는 안정적인 재화로, ‘아트테크’라는 용어가 통용되는 투자 아이템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술품이란 기본적으로 ‘희소성’을 기저에 둔다. 공산품이 아닌, 작가에 의해 손수 창작된 유한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침(浮沈)은 있지만, 미술품의 거래금액과 작품가격은 시간이 갈수록 우상향곡선을 그린다. 잘 고른 작품 하나가 효자노릇을 한다는데 그렇다면 어떤 작품이 비싸게 거래되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의 작품인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 작가의 미술사적 업적과 영향력, 그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미술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월등한 능력으로 미술계의 비교 우위를 차지하거나 기존 미술계에 반향을 일으키는 사조를 개척해 정립한 작가, 새로운 기법이나 재료를 활용해 미술의 장르를 다양화 한 작가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작가들이 모두 미술시장에서 각광받는 것은 아니다. 미술시장 특히 경매나 갤러리를 매개로 컬렉터들 간 미술품이 거래되는 2차 시장은 수요·공급의 원칙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귀한 작품일수록 가격이 비싸다는 말로 귀결된다. 귀한 작품이라 함은 한마디로 규정 할 수 없고 작가마다 다른 양상을 보이기는 하지만 통상적으로 작가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전성기의 희소성을 갖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작품의 소장이력이나 전시이력이 명확하고 작품의 컨디션이 완벽하다면 더할 나위 없다. 작품의 가치를 더해주는 스토리텔링이 있다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1972년 뉴욕 작업실의 김환기 /사진제공=환기미술관




김환기는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전남 신안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며 서양미술을 접한 그는 귀국 후 한국적 정서가 깃든 산, 달, 항아리 등을 단순화하며 추상적으로 양식화된 작품을 제작했다. 이런 시도는 도불한 파리 시절에도 실험적으로 지속됐고 뉴욕에 진출해서는 구체적인 형상에서 벗어나 점·선 등 기본적인 조형요소를 활용해 추상으로의 본격적인 변화를 보였다. 서양미술의 올오버구도(화면 전체를 균질하게 표현)와 미니멀리즘의 간결한 색조를 수용하되 전통의 오방색과 서예 붓을 활용한 번짐을 특징으로 하는 전면점화를 통해 한국회화의 정체성을 구현하여 한국 추상화가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05-Ⅳ-71#200 우주’라는 작품은 김환기의 전면점화 중 가장 대작이며 유일하게 두 폭이 한 작품을 이룬다. 김환기는 우주를 그와 그의 아내인 김향안 여사를 빗대 불렀다고 한다. ‘너와 나’, ‘남과 여’, ‘해와 달’. 그렇게 불리던 작품은 현 환기미술관이 지은 ‘우주’라는 애칭으로 명명됐다. 애틋한 부부의 감정을 이입시킨 ‘우주’는 명실상부한 김환기 점화의 대표작으로, 관람객으로 하여금 스토리텔러로서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우주’는 작가의 주요 전시에만 18회 출품됐고, 전시 도록 23권에 수록됐다. 그 만큼 중요한 작품이라는 의미다.

1972년 뉴욕의 김마태 박사 자택에서 자신의 작품 '우주'를 배경으로 앉은 김환기. 층고의 제약 때문에 두 폭 그림을 가로로 길게 건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제공=환기미술관


‘우주’의 가치를 더한 또 한 가지는 소장이력이다. 이 작품은 김환기의 친구이자 주치의이자 후원자였던 뉴욕의 김마태 박사가소장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뉴욕 한국 문화계의 주요 인사였던 김마태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김환기의 ‘우주’를 소장해 거실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층고가 높지 않아서 가로로 나란히 걸어두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소장이력이 중요한 이유는 소장자의 컬렉션 수준이 해당 작품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역할을 하며, 진위에 대한 출처감정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요소가 ‘우주’의 희소성을 더했고 완벽한 컨디션도 작품의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우주’는 한국 근현대 미술품 애호가인 글로벌 세아그룹의 김웅기 회장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국보 수준의 작품이 해외에서 경매되어 외국인에게 낙찰될 것을 염려한 갤러리 현대 박명자회장의 권유로 응찰을 결심하고 경합 끝에 낙찰을 받았다고 한다. 김웅기 회장은 본인이 가장 애정하는 한국추상미술 선구자 김환기의 유일한 두 폭 작품이라는 희소성과 뛰어난 작품성을 알아봤다. 귀한 작품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자 한 의지에, 우수한 작품은 비싼 값을 치루더라도 소장하는 컬렉팅 고수의 심리가 반영돼 경합을 무릅쓴 것으로 보인다. 당시 낙찰을 받지 못한 언더비더들은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지 않을까? 만약 이 작품이 다시 경매에 나온다면 다시 응찰에 도전하는 잠재적 고객이 될 수도 있겠다.



▶▶필자 소육영은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했고 홍익대 미술사학과를 수료했다. 서울옥션에서 16년간 근무하며 미술품 경매 총괄이사와 서울옥션 강남센터장을 역임했다. 미술시장 및 경매 시장 분석, 경매 기획·운영의 전문가다. 고객 수요에 맞춘 아트컨설팅을 통해 개인과 기업의 미술품 컬렉션을 관리했고 그 인연으로 S2A(에스투에이) 디렉터를 맡았다. S2A에서 쿠사마 야요이·김환기·김창열과 이우환 등의 전시를 기획했고 한국 중견작가를 국내외에 알리고 해외 인기작가를 국내에 소개하는 전시를 개최했다. 현재는 미술 시장 및 컬렉션 매니징 전문가로 독립했고, 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을 비롯한 다수의 공공미술기관의 컬렉션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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