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8월 15일은 광복절로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날이 또 있습니다. 바로 관동(간토)대지진이 발생한 9월 1일입니다. 이 대지진으로 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했는데 가해자인 일본이 조선인 학살 사건을 기억하고 사죄해야 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14만 명이 행방불명되고 34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가운데 도쿄 등 관동 지역 일대가 큰 혼란에 휩싸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관동 지역에는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했으며 특히 “조선인이 약탈·방화를 저지르고 우물에 독극물을 탔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이로 인해 많은 조선인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는데 그 수는 6000명에 이른다고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아직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사를 반성하는 일부 일본인들이 그 사건의 진실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일본의 시민단체 ‘호센카(봉선화)’가 바로 그곳이다.
니시자키 마사오 호센카 이사는 1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독일 정부는 유대인 학살을 반성·사죄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교육 현장 등에서 조선인 학살 사건을 철저하게 숨기는 모습”이라며 “호센카는 이 사건을 일본인들에게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고 진실을 숨기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센카의 설립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니시자키 이사는 “당시 ‘도쿄 아라카와 강변에 관동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들의 유골이 아직 묻혀 있다’는 동네 노인들의 증언이 있었다”며 “이에 뜻있는 일본인들이 모여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유골을 발굴하고 추모하는 모임을 결성했고 이 모임이 1993년 사회교육 단체로 등록되면서 이름을 ‘호센카’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변경된 단체의 이름은 한국의 전통 꽃이자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봉선화’로 지었다고 한다. 그는 “추모 모임이 결성됐을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조선인 학살 이야기를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아 망설임 없이 모임에 가입했다”면서 “조선인 유골이 묻혀 있다는 아라카와 강변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 인근으로 어릴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놀던 곳”이라고 전했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곳에서 일본의 만행이 자행됐다는 것을 안 그는 충격과 함께 만감이 교차했다고 했다.
40년 넘게 조선인 학살 진실 알리기 활동을 해온 니시자키 이사는 “일본의 공교육에도 조선인 학살에 대한 내용은 없고 일본 정부도 국회에서 ‘조선인 학살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며 “그래서 호센카는 많은 일본인들에게 조선인 학살 사건을 알리기 위해 민간의 증언을 모으고 있고 숨진 조선인을 추모하는 ‘바람아, 봉선화의 노래를 전해라’는 책을 2001년 출간했다”고 설명했다.
호센카 사무실은 조선인의 유골이 묻혀 있는 아라카와 강변 인근의 주택가에 자리해 있다. 사무실 옆에는 조선인 추모비가 있는데 일본인들이 땅을 매입하고 세운 것이다. 추모비에는 한자로 슬퍼할 ‘도(悼)’자가 새겨져 있으며 니시자키 이사는 추모비를 관리하는 일도 도맡아 하고 있다.
“조선인 학살에 대해 100년 전 일본은 ‘현재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지만 지금은 ‘기록이 없어 이에 대한 답변이 힘들다’고 합니다. 100년 전보다 후퇴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 함께 조선인 학살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아직도 땅에 묻혀 있는 유골을 수습하는 한편 유족을 찾아 보상해야 합니다. 특히 일본 정부는 과거 식민지 지배의 역사와 가해의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할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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