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끝없는 정쟁으로 국정 마비가 우려되고 있다. 22대 국회 들어 야당이 발의한 탄핵안은 7건, 특검법은 9건에 달한다. 헌법학자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생 법안 표류의 1차적 책임은 과반 의석을 가지고 국회를 주도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져야 한다”며 “민주주의의 성장은 다수의 횡포와 같은 부작용을 억제하고 장점을 살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헌법상 탄핵 요건인 위헌·위법이 없는데도 탄핵을 밀어붙이는 것은 법을 준수해야 할 입법자가 주권자의 명령인 헌법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거대 야당이 밀어붙인 ‘노란봉투법’과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과반 의석을 가진 야당이 입법을 강행하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시키는 게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고 있다. 국민들의 짜증과 불만이 쌓이고 있다. 여야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건지, 풀어갈 생각이나 의지가 없는 건지 분명하지 않다.
-파업 조장 우려가 있는 노란봉투법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데.
△민주화 과정에서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동일시한 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의 투쟁이 항상 정당하다는 잘못된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많다. 노란봉투법의 내용도 사용자를 누르고 노동자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주겠다는 편향성이 크다. 이 법이 실행됐다면 문재인 정부 시절 전세 대란 등 혼란을 초래한 ‘부동산 임대차 3법’과 같은 일이 되풀이됐을 것이다. 이로 인해 투자가 줄고 경제가 침체될 수 있다. 올바른 해결 방향은 양쪽의 균형을 잡는 것이다.
-파업 노동자 개인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고 노동자의 공동 불법행위에 대한 연대책임을 배제하는 게 논란이 되고 있는데.
△불법행위로 손해를 본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하는 건 합법적인 행위자보다 불법적인 행위자를 편드는 것이다. 수백 명 또는 수천 명이 불법 파업에 가담해 기물을 파괴했는데 누가 어떤 것을 파손했는지 확인해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한 것은 사실상 손해배상을 받지 말라는 소리다. 거부권 행사가 아니더라도 시행되면 헌법재판소로 가야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은 행정부의 예산편성·집행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헌법상 재정 운용의 주체는 정부이고 이에 대한 감시·통제의 역할을 하는 곳은 국회다. 국회가 예산 삭감을 일방적으로 할 수 있지만 증액하거나 새 항목을 설치할 때는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연간 장애인 지원 예산의 두 배 정도인 13조 원이나 드는데도 야당이 정부의 동의 없이 밀어붙이니 삼권분립 훼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의 정쟁으로 시급히 처리돼야 할 민생·경제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진영 갈등이 감정적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여야가 말로는 협치를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협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도 취임 직후 한동안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만나지 않았다. 민주당도 과반 의석을 가지고 입법을 마음대로 하려고 해왔다. 심지어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오래전부터 ‘보수 궤멸론’을 얘기해왔다. 이런 식으로 여야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겠는가.
-진영 간 극단적 대립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과 그 과정에서의 검찰 수사에 있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 정권이 왔다 갔다 하면서 정권을 잃은 집단들의 상실감이 너무 컸다. 그러다 보니 정권에 대한 집착도 커졌다. 정권을 얻으면 승자 독식 구조 아래 다 가져갔고, 정권을 놓치면 다 잃었다. 야당이 국정 발목 잡기 외에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극한 대립 정치를 해소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하고 총리는 국회가 뽑아서 권한을 나눠갖도록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총리가 발목 잡기 경쟁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하는 것이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권력 분산은 국론 분열을 증폭시킬 것이라는 반론이 있는데.
△적대적으로 대립하거나 남남 갈등이 심해지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하다.
-대통령제에서 행정부와 국회가 극단적으로 대립할 경우 마땅한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인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 대통령과 국회의 다수당이 다르게 나온다는 것은 국민들 내에서도 갈등이 있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승자 독식 구조를 깨야 한다.
-그동안 개헌론이 많이 제기됐지만 성공하지 못했는데.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부분부터 바꿔야지 밀어붙이고 싸워서는 어느 쪽도 이루지 못한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국회에 보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부결됐다. 당시 문 대통령이 협상을 통해 주고받기를 한 다음에 최종안을 보냈어야 했다. 합의되는 것부터 1차 개헌하고 합의되지 않은 것은 시간을 더 갖고 논의하는 게 현실적 대안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거대 야당이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 네 차례의 탄핵을 시도했다. 22대 국회 개원 후 두 달여 만에 야당이 발의한 탄핵안이 무려 7건에 이른다.
△일반적인 절차로서 징계하기 어려운 고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국회가 탄핵 소추를 하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하도록 했다. 헌법 제65조는 직무상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행위를 탄핵 소추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방통위원장의 위헌·위법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 방통위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해 탄핵을 시도하고 있다. 법을 준수해야 할 입법자가 국민투표에 의해 확정된 주권자의 명령인 헌법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야당이 발의한 특검법이 9건에 달한다. 민주당 의원들이 이 대표와 관련된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 중인 검사를 수사하는 특검법안까지 발의했는데.
△특검법에서 여야가 함께 또는 대한변호사협회 등 제3의 기관이 추천한 특별검사를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을 뺀 다른 정당이 복수로 추천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 국회가 사실상 직접 특검을 지명하고 수사하게 한다면 정부의 수사권을 빼앗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이런 문제가 제기돼 의회가 특검을 임명하던 것을 법무부 장관이 항소법원에 요구하면 항소법원이 임명하도록 제도가 개선됐다.
-국가기간전력망 확충법 등 수많은 민생·경제 살리기 법안들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 정부·여당도 문제이고 야당도 문제라는 양비론이 커지고 있다. 양쪽 다 책임이 있지만 누구에게 더 1차적 책임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입법 관련 문제는 과반 의석을 가지고 국회를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이 져야 한다. 권한이 있는 만큼 책임도 있다. 탄핵 소추나 특검법 등 딴 일에만 몰두하느라 국민이 요구하는 일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
-거대 야당의 탄핵·특검 몰이와 포퓰리즘 입법 폭주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덮으려는 정치 공세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검사 탄핵 추진이 그 증거라고 국민들은 느끼고 있다. 탄핵 대상이 된 4명의 검사 중 ‘민주당 돈봉투’ 사건을 수사한 1명을 뺀 나머지 3명이 이 대표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다음 대선까지 수사를 늦추려고 그러는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헌재에서 검사 탄핵안들에 대한 인용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알렉시 드 토크빌이 자신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폭정’이 벌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는데.
△고대 그리스 때부터 군주제는 폭군 참주제로, 귀족제는 과두제로, 민주제는 중우정치로 타락할 수 있다고 얘기해왔는데 이는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천 년 인류 역사를 경험해보니 민주주의가 가장 나았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선택하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억제하려는 현상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돼 있다.
-밖으로는 글로벌 신냉전·블록화와 경제기술 패권 전쟁, 안으로는 인구절벽과 저성장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눈앞의 권력 때문에 진영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 정치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위기 징후를 알리고 대비해야 하는 데 내 임기 중에만 터지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5년 단임제의 폐해 때문이다. 내각책임제에 빗대 ‘대통령 무책임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개헌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히다 보니 이뤄지지 못하는 것인가.
△임기 초에는 개헌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임기 말에 개헌하려고 하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반복됐다. 단임제가 장기 집권 독재를 막은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정 운영의 연속성·효율성 저해, 레임덕 초래의 문제들이 더 크다. 우리 시스템과 약간 다르지만 독일은 기본법(헌법)을 1949년 만든 후 60여 차례나 개정했다. 우리는 딱 9차례만 했다. 헌법이 살아 있는 게 아니라 화석이 돼가고 있다.
◆He is…
1960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 대광고와 고려대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고려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헌법학자로, 진실화해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민주헌법과 국가질서’ ‘헌법학’ ‘대한민국헌법의 역사’ 등이 있다.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개헌특위자문위원회·정개특위자문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연구위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